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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후 어머니의 성씨와 본관을 따라 성(姓)을 변경한 아들도 어머니 종중(宗中)의 구성원 자격이 인정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종중은 “모계혈족의 자손은 종중 구성원이 될 수 없다”며 구성원 인정을 거부했지만 1·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종중의 일원임을 인정해 달라’는 아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이모씨(34·남)가 ‘용인 이씨’ 종중을 상대로 제기한 종원(宗員) 지위 확인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3일 밝혔다.

그래픽 | 이아름 기자

그래픽 | 이아름 기자

출생신고 당시 아버지의 성·본을 따른 ‘안동 김씨’였던 이씨는 2013년 어머니를 따라 자신의 성·본을 ‘용인 이씨’로 변경했다. 그리고 2년 뒤 어머니 일가 쪽 ‘용인 이씨’ 종중에 구성원 자격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종중은 이를 거부했다. 모계혈족의 자손을 종중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A씨는 종중을 상대로 소송을 내 1·2·3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법원은 “헌법상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 원칙에 따라 변화돼 온 법의 개정취지를 적극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부계혈족사회의 전통이 내려온 한국에서 과거 민법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것을 허락했다. 제사는 남성 혈족의 전유물이나 다름 없었고, 여성은 친아버지의 제사까지도 참여하기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여성이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관습법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5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이를 뒤집었다. “성별만을 이유로 종중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하거나 차단하는 것은 가족 내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돼 온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성도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종중 구성원으로 인정받게 된 여성의 자손은 어떻게 할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예전에는 어머니 성을 따르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5년 민법 개정으로 모친의 성·본을 선택해 따를 수 있게 되면서 종중 구성원 인정 여부가 사회적 쟁점이 된 것이다. 더구나 이번 사건의 원고 이씨는 출생 당시엔 ‘안동 김씨’ 문중이었지만 이후 ‘용인 이씨’로 바꾼 경우이다.

‘용인 이씨’ 종중 측은 재판에서 “종중은 본질적으로 부계혈족을 전제로 하는 단체”라며 “일가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이유로 여성 종중 구성원의 자녀를 종중에 받아들이거나 종중 변경을 허가하게 되면 아버지와 어머니 일가 중 재산이 더 많은 쪽의 성과 본을 선택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성과 본의 변경은 법원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허가되고, 제도 남용 우려를 이유로 종중 구성원 범위를 판단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민법은 1990년 부계혈족과 모계혈족을 차별하지 않고 친족의 범위를 규정하도록 개정됐고, 2005년엔 양성평등이라는 헌법이념에 따라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호주제를 폐지했다”면서 “이런 개정 취지를 볼 때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른 후손의 종원 자격을,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른 후손과 달리 판단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박용필 기자 phil@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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