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당시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아온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구속을 피했다. 서울동부지법은 지난 15일 “범죄 혐의에 대한 대체적 소명은 이뤄진 것으로 보이나, 일부 혐의에 다툼 여지가 있고, 피의자의 지위·태도에 비춰 도망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백 전 장관 신병을 확보한 뒤 청와대 ‘윗선’ 개입 여부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검찰 계획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백 전 장관은 2017~2018년 산업부 산하기관 13곳의 기관장들에게 사표를 받기 위해 인사권을 남용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를 받고 있다. 검찰은 당시 인사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한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와대와 산업부 사이에서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에 주목해왔다. 검찰은 백 전 장관 영장 기각으로 수사에 속도조절이 불가피해졌음을 인정하면서도, 법원에서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됐다고 판단한 만큼 수사를 밀어붙일 태세다.
16일에는 경찰이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해 사업 인허가를 담당한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했다. 백현동 사업은 이재명 민주당 의원이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때 추진된 사업이어서 이 의원 연루 여부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어떻게 문재인 정권 수사와 이(재명) 의원 수사를 동시에 하느냐”며 기획수사·보복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맞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중대범죄 수사를 보복이라 한다면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검찰과 경찰은 부패범죄를 제대로 수사하라고 국민 세금으로 월급받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전 정권 수사를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해야죠. (수사가) 돼야죠”라고 답한 바 있다. 당시 청와대와 민주당은 사실상 정치보복을 선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금 민주당은 윤 대통령 발언이 집권 한 달여 만에 현실화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련의 수사가 기획수사·보복수사인지는 결국 사실과 증거에 따라 가려질 것이다. 검찰과 경찰은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특정 정치세력이나 정치인을 겨냥한 과잉수사·표적수사를 해선 안 된다. 정치보복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