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18일 “법률에 정해진 공직자의 임기를 두고 거친 말이 오가고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리는 상황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법의 정신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권이 “정권의 철학과 다르다”며 사퇴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데 대해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역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도 최근 “관련 법률에 임기제와 합의제가 명시돼 있다”며 임기를 채울 뜻을 밝혔다고 한다. 권익위와 방통위는 정권과 독립되어 국민 입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기관장 임기를 법으로 보장한 이유도 그래서다. 여권은 전·한 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을 즉각 멈춰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한 위원장을 “(국무회의) 필수요원도 아닌 사람들” “굳이 올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임기 유지에 부정적 뜻을 내비쳤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후안무치”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여권 주장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검찰이 산하기관장들의 사직을 강요했다며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무엇보다 윤 대통령 자신도 검찰총장이던 2020년 10월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임기라는 것은 취임하면서 국민들과 한 약속이니까, 어떤 압력이 있더라도 제가 할 소임은 다할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권익위와 방통위의 정치적 중립성은 검경 같은 사정기관 못지않게 중요하다. 권익위는 정부와 공직사회를 감시하고, 방통위는 방송과 전파를 관리·감독한다. 두 기관의 수장이 임기 도중에도 정권 입맛에 따라 바뀐다면, 공직사회와 방송사, 통신업계 등에 나쁜 신호를 주게 될 것이다.
다만 이번 기회에 정무직 고위공직자의 인사관행 개선방안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대선 후 차기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행정부, 공공기관 직책 리스트와 자격 요건을 규정한 ‘플럼북’(Plum Book)을 공개한다. 정권교체기마다 공공기관장 인사 등을 놓고 소모적 논쟁을 벌이는 정치권도 한국판 플럼북 도입을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기관별 특성과 책무를 고려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보다 국정철학 공유 여부가 중요한 기관의 경우 새 대통령에게 임면권을 주는 방식을 논의할 수 있다. 대통령과 주요 정무직 고위공직자의 임기를 맞추는 입법도 고려할 만하다. 여야는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제도 정비를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