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3일 ‘검찰총장·경찰청장 패싱’ 논란을 빚은 검경 인사에 대해 “책임장관에게 인사권을 대폭 부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치안감 인사가 번복된 초유의 사태에 대해서는 “아주 중대한 국기문란”이라며 경찰을 질타했다. 검경에서 벌어지는 독립성·중립성 시비를 무시한 채 한동훈 법무부·이상민 행안부 장관에게 힘을 실어줬다. 반대 의견 따위는 개의치 않겠다는 인식이 우려스럽다.
윤 대통령은 이날 “법무부 장관이 (전날 고검장·검사장 인사를) 잘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검찰총장이 47일째 공석 중에 고위직 인사가 이어져 ‘식물총장’ 우려가 나온다는 지적엔 “검찰총장이 식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번 고검장·검사장 인사도 직할체제 구축과 문재인 정부 고위직 좌천 기조를 그대로 보여줬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으로 추미애 법무장관과 갈등을 빚던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해 “인사권도 없고 주변에서 다 식물총장이라고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이 총장일 때는 ‘패싱 인사’를 비판해놓고 지금은 그걸 묵인·방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에 대해서는 두 차례나 ‘국기문란’이라는 표현을 썼다. 대통령 재가 전 경찰이 자체 추천한 인사 내용이 유출된 것일 뿐 번복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 수뇌부는 이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오후 6시15분에) 경찰청이 올린 안과 다른 1차안이 내려왔고, (2시간 뒤에) 또 한 번 수정됐다. 1차 안은 행안부와 분명히 얘기된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최종안 공개도 정부·대통령실과 협의 후 공지하던 관행을 따라 윤 대통령이 재가한 10시 전에 이뤄졌다. 이 사안의 초점은 행안부에서 1차·최종안이 내려온 2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총경 이상 고위직을 경찰청장이 추천해온 권한이 왜 무력화됐느냐는 점이다. 이 과정에 ‘윤핵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나온 만큼 이대로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
검경 수장의 인사 추천·협의 절차를 법에 명시한 것은 두 기관의 독립성·중립성을 각별히 중시한다는 뜻이다. 이런 일을 책임장관제로 얼버무리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다. 윤 대통령은 경찰의 인사·예산·감찰·징계권을 행안부 경찰국에 넘기는 문제도 “법무부에 검찰국을 잘 두고 있다”는 말로 비켜갔다. 경찰청장 지위를 장관급으로 격상하겠다는 공약을 바꾼 것이다. 이래서는 윤 대통령의 법치도 ‘내로남불’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행안부에 경찰국을 두는 방안은 철회하고, 인사 번복의 진상과 책임은 엄정히 가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