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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와 능소화

꽃이 귀한 여름, 오렌지 빛깔의 꽃을 피우는 능소화는 격려의 꽃이다. 무더위와 장마에 지친 사람들에게 손나팔을 불며 ‘기운 차리시라’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다. 담장을 타고 오르는 줄기도 역동적이다. 능소화는 한자로 凌宵花로 표기하여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고, ‘양반꽃’이라고도 불려 조선시대까지 귀한 대접을 받았다. 1830년 유본예의 <한경지략>에는 김한신이 살던 자하문, 덕흥대원군의 사당이 있던 사직동, 그리고 심상규가 살던 중학동에 자랐다고 전한다. 1930년대 문일평은 <화하만필>에서 덕흥대원군 사당의 능소화가 서울 안에 남은 유일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당시 서울에서도 귀했던 능소화를 강릉에서 볼 수 있었으니, 바로 선교장의 열화당 앞마당이다. 선교장은 효령대군의 11세손 이내번이 조성하였다. 그의 19세손 선교장 관장 이강백 선생이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 들은 능소화 이야기는 사뭇 감동적이다. 지금으로부터 120여년 전 그의 증조부 이근우가 선교장 주인이었던 시절, 선교장은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구경하기 위해 강릉을 찾는 사람들의 베이스캠프 같은 역할을 했었다. 어느 날 충남 서산에서 올라온 어느 선비가 선교장에 들러 며칠 신세를 졌다. 그는 자기 집에 키우는 능소화를 자랑하며 다음에 들를 때는 갖고 오겠노라고 약속하였다.

수년이 흐른 후 그 약속을 까맣게 잊은 이근우 앞에 서산의 한 사내가 능소화를 지고 선교장에 나타났다. 그는 능소화를 약속했던 서산 선비의 하인이었다. 주인이 세상을 뜨면서 능소화를 선교장의 이근우에게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충직한 하인은 서산에서 출발하여 산 넘고 물 건너 선교장에 도착하였다. 족히 열흘은 넘게 걸렸으리라. 그는 능소화 뿌리가 마를까 봐 낮에는 개울가에서 쉬면서 이끼로 뿌리를 덮어주고, 주로 햇빛이 없는 저녁과 밤에만 이동했는데, 그게 다 선비의 세심한 충고를 따른 것이었다. 내막을 소상히 들은 이근우는 약속을 지킨 선비의 신의와 하인의 정성에 탄복하였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 전통을 알고 있음에도 그가 굳이 열화당 마당 한가운데에 능소화를 심은 것은 바로 그런 연유에서다. 선비는 무릇 신의가 우선이니. 후손들이 교훈으로 삼으라는 의도였다.

세상을 뜨면서도 약속을 지키려 했던 선비와 열흘을 넘게 걸어 주인의 약속을 지켜준 하인. 전국 꽃 배달 당일 배송이 가능한 오늘보다 19세기의 아날로그적 삶이 더 감동적인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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