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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박스가 위험해

입력 2022.07.07 03:00

수정 2022.07.0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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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제트제트제트 플립플립플립.’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휴대전화 이름이다. 제트와 플립이 반복된다. 유튜브 채널 ‘킥서비스’에 종종 등장하는 2032년 출시 버전이다. 이때 함께 나온 애플의 스마트폰은 ‘아이폰24’라는 설정이다. ‘갤럭시 제트제트제트 플립플립플립’은 꼬깃꼬깃 접어 놓은 종이(를 닮았)다. 펴고 펴고 펴고 또 펴면 스마트폰 크기가 되고 천연덕스럽게 통화를 한다. 가장 인기 있는 영상 ‘여기가 인스타 핫플이래’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사진은 아이폰24지, 아니지 갤럭시 제트제트제트 플립플립플립이지”라고 자랑한다.

10년 뒤인 2032년의 세계관을 그리는 ‘스케치 코미디’다. 2022년의 현실을 비틀고 10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이를 강화함으로써 웃음을 만든다.

유튜브 공간에서는 ‘스케치 코미디’가 대세다. ‘숏박스’ ‘너덜트’로 대표되는 코미디 영상은 조회수가 수백만회를 기록한다. 주변에 있을 법한 상황을 설정하고 사실적 요소를 극대화함으로써 공감을 이끌어낸다. 숏박스의 인기 콘텐츠 시리즈 ‘장기연애’와 ‘찐남매’는 11주년을 맞은, 심드렁하면서도 서로를 잘 챙기는 연인과 아무렇지 않게 욕설을 주고받는 남매의 상황극을 담았다. 최다 조회수가 1000만회를 넘겼다.

과거 코미디 스타일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과장해서 웃음 포인트를 만들었다면 최근 대세인 스케치 코미디는 실제 생활에서 있을 법한 상황 속에서 웃음 포인트를 찾는다. ‘진짜 너무 현실적이네’ ‘실생활에서 나오는 대화들, 어케 저렇게 리얼이지?’라는 댓글이 달렸다. 실생활 속 쉽게 무시될 법한 사소한 디테일을 끄집어내 강화, 과장함으로써 ‘빵 터지게’ 만드는 것이 열쇠다. 실제 같기는 한데, 더 사실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하이퍼리얼리즘 코미디’라는 별명을 얻었다.

유튜브서 터진 개콘 폐지의 역설

극사실주의로 번역되는 하이퍼리얼리즘은 196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다. 마치 사진처럼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포토리얼리즘이라고도 한다. 사진이 있는데 굳이 왜 그림을 사진처럼 그릴까. 하이퍼리얼리즘의 목표는 예술가의 기술적 완성도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대상을 극도로 정밀하게 묘사함으로써 거꾸로 작품이 묘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데 있다. 리얼리즘의 극단인 동시에 리얼리즘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역할을 한다(문학비평용어사전).

하이퍼리얼리즘 코미디가 ‘빵 터지는’ 것은 극사실 연기를 통해 거꾸로 실생활의 이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당근마켓 남편들’(너덜트)에서 주인공들은 으슥한 골목길에서 만나 장난감 활을 거래하며 끊임없이 배우자와 통화한다. 두 명이 나오는데 4명이 등장하는 것 같은 혼란한 상황이 웃음 포인트다. 단계마다 허락을 묻는 장면은 거꾸로 가족 성원 간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드러낸다.

여기서 또 하나의 역설. 하이퍼리얼리즘이 유튜브 대세 콘텐츠가 된 것은 21년 동안 이어 온 <개그콘서트> 폐지 덕분이다.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코미디 배우들이 설 자리를 잃으면서 유튜브로 옮겨와 새로운 영역을 만들었다. 2019년 피식대학을 시작으로 숏박스, 킥서비스 등이 모두 ‘개콘’ 출신 배우들로 구성됐다. 개콘 폐지 때 떠돌던 농담. “정치가 이렇게 코미디인데, 누가 개콘을 보겠냐.” 그래서 또 걱정이 된다. 하이퍼리얼리즘 코미디의 위기가 오지 않을까.

지금 정치는 하이퍼리얼리즘의 정수다. “대통령을 처음 해 봐서” “선거 때도 지지율은 유념하지 않았다”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들 중에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는 대사는 ‘정말 저런 말을 했다고?’ 되묻게 만드는 극사실주의다. 제2부속실 폐지 공약 속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민간인 수행 논란’이 연달아 나오는 것 역시 하이퍼리얼리즘이다. 혈중알코올농도 0.251%, ‘넌 외모가 중상, 중하’ 발언은 사실을 뛰어넘는 사실이다.

지금 정치는 하이퍼리얼리즘 정수

킥서비스의 2032 시리즈가 생각났다. 2032년 대선에서 만약 기자 출신 대통령이 된다면. 법조기자를 오래 같이한 후배를 법무부 장관에, 금융 담당을 오래한 후배를 금융감독원장에, 사회부 캡을 지낸 후배를 행정안전부 장관에 임명한다면. “해당 분야를 오래 취재해 전문성이 뛰어나고 기자 업무 특성상 대국민 소통에 능하다”는 이유를 댄다면.

초속 11.2㎞(중력 탈출 이론 속도)로 지구를 떠나고 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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