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8일 당 윤리위원회에서 ‘당원권 6개월 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당 윤리위원회는 이 대표가 성비위 의혹을 덮기 위해 측근인 김철근 당대표 정무실장에게 증거인멸을 교사했다고 보고 품위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징계를 내렸다. 제보자를 만나 7억원의 투자유치 각서를 써준 것으로 알려진 김 실장은 ‘당원권 2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 대표는 징계 기간인 6개월 동안 당대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다. 한국 정치사에서 주요 정당 대표가 내부 징계를 받고 직무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이 대표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면서 집권여당 국민의힘은 대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대표 권한으로 우선 징계 처분을 보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가처분 신청·재심 요구 등의 조치도 취할 것이며, 자진사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윤리위의 징계 결정에 불복할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반면 권성동 원내대표는 “징계 의결 즉시 효력이 발생해 이 대표 권한이 정지되고 원내대표가 직무대행을 맡게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당대표 직무대행인 자신이 11일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할 것이라고도 했다. 양측의 이 같은 대치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과 이 대표 측이 당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권력 다툼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낯부끄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 대표의 ‘버티기’가 계속될 경우 국민의힘 내분 사태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경제·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여당이 국정 현안은 뒷전으로 미룬 채 권력 투쟁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 국민의힘은 당 차원의 대국민 사과를 하고, 원칙에 따라 조속히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국회 정상화 등 집권당으로서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여권 내부의 권력 갈등이 부각되면서 성비위 사건의 본질적 측면이 흐려지고 있는 점은 유감스럽다. 이 대표 징계의 근거가 된 증거인멸교사 의혹과 함께, 사건의 본류인 성비위 의혹도 낱낱이 규명돼야 한다. 이 대표는 권력 갈등의 희생자로 자신을 매김하지만, 정치적 논란 차원으로만 치부하고 넘길 일은 아니다. 이 대표는 자신을 둘러싼 성비위 의혹에 대해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은 신속하고 엄정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정치적 고려는 배제하고, 오로지 사실과 증거에 따라 수사해 한 점 의혹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의 성비위 의혹에는 관용이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