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일을 반복하면서 갖게 된 확신이 있다. 죽도록 노력하더라도 나는 어느 한계 이상의 글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얄팍한 공부나 흐릿한 판단력 때문만은 아니다. 전자는 계통적이고 성실한 독서와 배움으로, 후자는 눈 밝은 동료들과의 문답으로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시간과 노력이 꽤 필요하겠지만.

김현호 사진비평가·보스토크 프레스 대표
에둘러 말할 생각은 없다. ‘서울 출신의 고학력 중산층 비장애인 이성애자 중년 남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솔직히 저 비릿한 단어들 중 몇 개는 이미 반쯤 부서진 이빨처럼 흔들거리고 있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찾듯이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소수자성을 찾아내 들이밀 정도로 뻔뻔하지는 못하다.
물론 글쓰기가 자신을 배신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믿는다. 질 들뢰즈는 <대담>에서 이렇게 썼다. “자신이 속한 체제, 자신의 성, 자신의 계급, 자신이 속한 다수를 배반하기 - 글을 쓰는 데 이것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 그리고 글쓰기를 배반하기.” 이 문장의 청량한 희망이 없었더라면 토끼처럼 빨간 눈으로 두통약을 까 먹으면서 밤늦게 책상에 앉아 있을 일도 없었다. 사실 작가의 삶을 통해 글이 지닌 의미를 모두 알 수 있다고 믿는 태도는 지나치게 낡고 조악한 결정론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 지난 몇년간, 많은 것들을 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이삼년 전 사진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찾아온 적이 있다. 예술가가 되고 싶어하는 젊은 여성들이었고, 작가가 되는 길이 ‘딱 하나밖에’ 없는지를 궁금해했다. 성공한 작가였던 교수는 갤러리의 단체전과 개인전 기회를 얻고, 미술관 전시에 참여하고, 비엔날레로 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고 했다.
물론 다른 경로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교수 자신의 성공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하려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다. 등록금을 내고 지도를 받고 있지 않는가. 유명한 작가가 교수라면 최소한 학위 과정 동안은 믿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멍청하게도 혼자 흐뭇해했던 기억이 난다. 학생들은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주섬주섬 일어났다.
그리고 몇년 후, 그 교수는 성희롱과 폭언으로 대학에서 해임되었다. 학생들은 수많은 단체와 연대하며 열심히 싸웠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불안해하기만 했다. 혹시 그때 그들은 차마 묻지 못한 질문들이 있던 게 아닐까. 대학 제도 밖에 있는 이에게 말하려던 게 더 있었던 건 아닐까. 정말 나는 전시에 열심히 참여하라는 식의 말이 사실 그 기회를 쥔 이들에게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것을 모를 만큼 멍청했을까. 이런 거짓 죄책감은 나를 오래도록 괴롭힐 것이다.
요즈음 내게는 이런 어리석은 판단 착오가 유난히 잦았다. 작년에는 어쭙잖게 장애 예술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장애인들의 감각과 인지 방식이 비장애인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넓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큰 실수는 모면했지만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 작가에 대한 둔한 글을 무감각하게 써내기도 했다. 점점 나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다. 즉 내게는 세계의 균열을 감지하는 예민한 감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한때 있었다는 믿음 역시 착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거니와, 위험한 결정론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세상과 불화할 일이 없으므로, 정말로 보지 못한다. 빚진 것이 없어 보이는데도 ‘미안해서 비건이 되었다’고 쓰는 공연예술가 하은빈의 예리하고 섬세한 마음이나, 자신을 뒤적거려 ‘타자성’을 찾는 일을 경계하는 작가 김원영의 결연한 지성과 유머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있다 생각한 적도 없다. 글쓰기가 대체로 세계를 이해하는 행위라면, 그들과 나 사이에는 대단한 지적 격차가 있다. 물론 경쟁 따위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흐릿한 눈에 압도적인 존경의 마음을 담을 뿐이다. 아마 그런 것이 나의 자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