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자마자 개헌안을 조기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선거 과정에서 암살당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을 담은 평화헌법이 개정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는 데 최종 장애물을 없애려는 이러한 시도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이번 선거로 ‘개헌세력’인 자민당(119석), 공명당(27석), 일본유신회(21석), 국민민주당(10석)이 참의원 248석 중 177석을 차지해 개헌 발의 가능한 166석을 넘겼다. 중의원은 지난해 10월 개헌세력이 전체 465석 중 345석을 차지해 개헌 발의 가능한 310석을 넘긴 바 있다. 개헌안은 양원에서 3분의 2 찬성으로 발의되고, 국민투표 과반 찬성을 얻어 채택된다.
개헌을 향한 일본 보수파의 발걸음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0일 “가능한 한 빨리 (개헌안을) 발의해 국민투표로 연결하겠다”고 하더니 11일에는 “전 총리 뜻을 이어받아 특히 열정을 기울여 온 헌법 개정 등 그의 손으로 이루지 못한 난제들을 다뤄나가겠다”고 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여론이다. 지난 10일 NHK 조사에서 개헌 찬성과 반대 응답은 각각 45%, 25%였다. 찬성이 과반에 미치지 못했지만, 반대 여론이 20%포인트나 낮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아베 전 총리 암살 등으로 개헌에 대한 저항감이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2차대전 직후인 1947년 만들어진 헌법의 9조는 일본이 전쟁이나 무력행사 위협을 하는 권리를 포기하고, 이를 위한 전력 보유를 금지해 ‘평화헌법’으로 불린다. 이 규정에 따라 일본은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고, 경제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민당은 헌법 9조에 자위대 역할을 명시하는 등의 개헌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아베 전 총리가 재집권한 2012년부터 자민당은 집단자위권 인정, 무기수출 등 안보법제 개정으로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키는 한편 개헌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국가’가 되겠다고 했다. 평화헌법을 지지해온 미국도 중국 견제 등을 위해 일본 우경화를 묵인해 개헌론자들이 힘을 키우고 있다.
개헌 여부는 오직 그 나라 시민이 결정할 사안이다. 하지만 일제의 혹독한 지배를 경험한 한국의 시민으로서 일본의 재무장을 가능케 하는 개헌을 분명히 반대한다. 평화헌법의 가치는 소중하다. 군비경쟁에 제동을 거는 양심적 목소리가 국가 차원에서도 가능함을 보여준다.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일본 시민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