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중 여성의 신체 부위를 동의 없이 촬영한 남성이 실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2500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개정 영향으로 성범죄에 대한 민형사상 선고 형량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북부지법 민사6단독 박형순 판사는 지난 4월 여성 A씨가 남성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25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B씨는 모임에서 만난 A씨와 성관계를 맺으면서 A씨의 동의 없이 성관계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이튿날 B씨의 행동을 의심한 A씨가 물어보자 B씨는 촬영 사실을 인정하고 메신저로 해당 영상을 A씨에게 보냈다.
서울북부지법은 “피고는 원고의 인격권과 초상권 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불법 행위를 구성하고, 이로 인해 원고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됐음이 경험칙상 명백하다”며 “피고는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동의를 받지 않은 성관계 동영상은 유포 여부를 불문하고 그 자체로 엄중하게 처벌하는 범죄라는 점, 원고가 피해사실을 진술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점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액을 책정했다고 밝혔다. 피고가 원고의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점, 원고가 수사·재판 과정에서 지출한 변호사 선임 비용도 손해배상액에 반영했다.
B씨는 같은 사건 형사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서울북부지법은 2020년 성폭력처벌법(카메라등 이용 촬영) 위반 혐의를 인정해 B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피고인이 초범이고 영상을 유포하지 않았다”면서도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과거 유사 사건에서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하던 것과 다르다. 예를 들어 울산지법은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을 동의 없이 촬영한 20대 남성에게 2018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고인이 영상을 유포하지 않았고 범행을 뉘우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B씨의 사례는 2019년 ‘버닝썬 게이트’, ‘위디스크 등 웹하드 카르텔’ 등 불법촬영물 문제가 공론화된 이후 불법촬영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은 강화되는 추세를 반영한다. 2020년 개정된 성폭력처벌법은 촬영대상자의 신체부위를 촬영한 사람의 징역 상한을 5년에서 7년으로, 벌금형 상한을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렸다. 법무부는 지난 4월 불법촬영 피해 등 인격권 침해에 대한 정신적 손해가 폭넓게 인정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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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 법무법인 율화 대표변호사는 10일 “예전에는 동의 없이 성행위 장면을 촬영하고 이를 소지한 사람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피·가해자간 합의를 보지 않으면 대부분 실형 판결이 나오고 있다”며 “죄가 중할수록 정신적 피해도 커진다고 볼 수 있다. 형사처벌 수위가 높을수록 손해배상 책임도 커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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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은 기자 energyeun@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