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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밥그릇은 어른이 챙겨야 한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대한 내 기억은 아이들이 꽉 찬 운동장으로 시작한다. 인파 속에서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키대로 설 자리를 정해주었다. 나는 81번이었고 1학년은 20반까지 있었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아동문학평론가

그때 만난 다양한 친구들이 가끔 생각난다. 주위를 둘러보면 늘 상상을 뛰어넘는 아이들이 있었다. 줄넘기를 들고 엇걸었다 풀어 뛰기를 식은 죽 먹듯 하는 아이, 전날 본 외화의 대사를 외워 성우와 똑같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아이, 연필 하나로 바퀴벌레를 진짜 벌레보다 더 번들거리게 그리는 아이도 우리 반에 있었다. 싸우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반에 한두 명쯤은 그 마음을 알아주어서 크게 서럽지 않았다.

얼마 전 충남과 경북에 있는 한 도시에 갈 일이 있었다. 충남의 도서관에서는 이용자가 거의 60대 이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청도서 중심으로 책을 입고하면 어르신 취향으로 장서가 편중된다고 했다. 재미있는 아동청소년도서를 찾아 갖추려고 노력하는데 그 책을 읽을 젊은 독자들은 손잡고 도서관에 올 친구가 없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이 세 명이고, 그렇다는 것이다. 경북의 어느 책방에서도 학생들과 나들이를 온 국어 선생님을 만났다. 남학생 두 사람이 왔고 책을 대하는 태도가 둘 다 진지해서 선생님이 섬세하게 지도하신다는 것이 느껴졌다. 훌쩍 현장학습을 나올 만한 책방이 근처에 있다는 것도 근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도 학년 전체가 두 명이었다. 싸우려 해도 싸울 친구가 없는 상황이랄까.

1980년 3월13일자 동아일보 4면 기사에 따르면 당시 서울 관악구 신대방동 문창국민학교 1학년은 23반까지 있었고 전교생은 9561명이었다고 한다. 아직 아이들이 많은 대도시 학교를 기준으로 해도 초등학교 전교생의 숫자는 지난 20년간 90% 가까이 감소했다. 어린이 곁에 어린이가 없다는 건 누구보다도 어린이 자신에게 심각한 일이다. 경험이 단조로워지고 어른들 중심의 세계에서 자신들을 지켜줄 든든한 또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린이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90% 이상 약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효은 작가의 그림책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방법>에는 다섯 남매가 나온다. 오남매는 나눗셈을 배우기도 전부터 무엇이든 5로 나눌 줄 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하고 무엇보다 빨라야 한다. 내 것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것이 이 집 아이들의 생존전략이다. 오남매가 함께 자란다는 건 어디라도 아플 때 “괜찮아?”라는 말을 네 번은 듣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른 다섯 아이는 다정함도 다섯 배다. 책임과 결정을 관계 속에서 배운다. 책 속의 오남매나, 1980년에 한 학교를 다녔던 9561명의 어린이들은 이제 중년이 되었고 그들의 권리를 잘 챙길 것이다. 어린이의 권리를 이야기할 틈은 잘 보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은 7월14일 ‘아동기본법 제정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시작했다. 아동기본법에는 아동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 ‘발달권’ ‘생존권’ ‘참여권’ ‘놀 권리’ ‘쉴 권리’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사항이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아동의 권리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법률 체계가 없었다. 아동을 보호와 교육 대상으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토론회에서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 유튜버의 노동권을 예시로 든다. 법은 아동이 경제활동을 강요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재의 노동법에는 유튜브에 출연하는 아동을 주체로서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아동기본법이 이러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어른이 된 오남매, 어른 9561명의 힘이 필요하다. 아동기본법의 제정에 힘을 모아야 한다. 어린이가 사라지는 위기의 시대에, 어린이의 밥그릇은 어른이 챙겨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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