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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아첨

입력 2022.07.18 03:00

수정 2022.07.1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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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는 아첨 물리치는 것 넘어
듣기 싫은 말을 들을 줄 알아야
그런데 새 권력은 그렇지 않은 듯

망국사는 아첨한 자들의 배신과
충언 물리친 자들 독선으로 점철

아첨은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리는 행위다. 아첨을 칭찬과 구별하기는 쉽지 않지만, “아첨은 감추어진 동기에서 듣기에만 좋으라고 과장되거나 거짓된 말을 하는 것이고, 칭찬은 듣는 이에게 인생의 긍정적 면을 보도록 격려해 주는 말이다”라는 풀이가 근사하다. 감추어진 동기란 무엇인가. 이솝 우화에서 교활한 여우가 멍청한 까마귀에게 노래를 청하는 숨은 이유는 까마귀가 물고 있는 치즈에 있다. 아첨은 본질적으로 속임수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아첨에도 급수가 있다. 로마 황제 네로는 무지한 폭군이지만 자칭 시인이고 가수다. 신하들 앞에서 자작시를 낭송하자 다들 감탄하느라 바쁜데, 오직 페트로니우스만 평범하다는 평을 내렸다. 어떤 결점이 있는지 지적해 달라는 네로의 요구에 페트로니우스가 엄숙하게 답한다. “오비디우스나 베르길리우스, 심지어 호머마저도 그들이 이 시를 썼다면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하지만 폐하는 그러실 수 없습니다. 폐하께선 세상이 이제껏 보지 못한 걸작을 창조할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더 노력하셔야 합니다.” 네로가 말한다. “신은 짐에게 뚜렷한 재능을 주시고, 또 진정한 비평가 친구를 내려 주셨도다.” 시엔키에비치 원작인 <쿼바디스>의 영화 시나리오에 나온 이야기인데, 아첨도 이 정도는 돼야 고수다. 아첨인지 칭찬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10월유신을 단행하고는 찬사를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당시 역사학자로 이름난 모씨에게 유신이 잘한 일인지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나왔다. “잘못하신 겁니다.” 긴장한 박 대통령이 왜냐고 물었다. 꾸짖듯이 그가 답했다. “10년 늦으셨습니다.” 오래전 시인 조지훈이 ‘지조론’에서 갈파했던바 “욕인(辱人)으로 출세의 바탕을 삼고 항거로써 아첨을 일삼는” 방법도 고단수다. 짐짓 야당 편에 서서 정권의 탄압을 자초하다가 변절하면서 한 자리 얻어 챙긴 인사를 나무라는 것이 글귀의 본지인데, 고육지책에 가까워 실행하기엔 좀 어렵겠다.

이런 아첨에 비하면 박정희 대통령이 문교부에 연두순시를 나갔을 때, 시책 보고에 앞서 “천학비재한 소직이 대명을 받은 지 4개월이 지났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해 죄송합니다. (중략) 둔마와도 같은 소직은 충성을 다하겠사오니 더욱 변함없이 채찍으로 계도해 주시길 복망합니다”라고 운을 뗀 장관의 아첨은 시원찮은 축에 든다. 전두환 대통령의 공적을 찬양한다면서 어느 시인이 쓴 시 중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라는 시구도 수가 한참 낮다. 전 대통령이 아직 국보위 상임위원장직에 있을 때 어느 언론인이 일간신문의 지면을 가득 채운 시론에서 “정로(正路)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엊그제 국보위 상임위원장 전두환 장군이 솔직하게 담백하게 자세하게 밝혀준 그 길이다”라고 한 것과 비교해 보라. 아첨 중 최하수는 이승만 대통령의 생리현상에 시원하시겠다고 한 장관의 언사 아니었을까 싶다. 그 아랫길로는 아는 게 없다.

근래 들어 새 법무부 장관이 임명받기에 앞서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사직 인사에 무려 3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개중엔 검사쯤 되는 이의 언사 치곤 낯간지러운 것이 더러 보였다. 영화 <쿼바디스>를 봤다면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장관님의 능력과 인품이라면 그만한 자리에 만족하실 일이 아닙니다. 더 높은 곳을 향한 꿈을 키우시지 않으면 실망입니다” 정도는 나올 법했는데.

심리학 실험 중엔 거짓말임을 알리고 듣기 좋은 말을 해 주면서 그 말을 듣는 이의 뇌파 변화를 측정한 게 있다. 뻔한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뇌파는 정직한 칭찬을 들을 때와 똑같은 그래프를 그려냈다. 아첨을 떨치기는 어렵다. 기억해야 할 것은 아첨에 종종 반전이 있다는 점이다. 본디 진심이 아니었으니 본색이 드러난다 해서 이상할 건 없다. 페트로니우스의 아첨은 이렇게 돌변했다. 죽음에 앞서 그는 이런 문구가 담긴 편지를 보낸다. “네로여, 네 어미를 죽이든 로마를 불태우든 네가 지은 그런 죄는 다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지루한 그 시들과 이류의 노래는 용서할 수 없다.” <논어>는 벗 삼지 못할 세 가지 인간 유형 중 하나로 아첨하기 좋아하는 자를 든다. 하지만 권력자는 아첨을 물리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나아가서, 듣기 싫은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새 정부 들어 보이는 문제 중 하나는 권력자가 듣기 싫은 말을 듣지 않는 듯하다는 점이다. 망국사는 아첨한 자들의 배신과 충언을 물리친 자들의 독선으로 점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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