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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불화하지 않는 풀뿌리?

입력 2022.07.19 03:00

수정 2022.07.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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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코너의 제목처럼 나는 2000년대 초반부터 풀뿌리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외쳐 왔다. 식민지와 군사독재를 거친 한국 현대사는 엘리트 중심, 행정 중심의 권력구조를 만들었고, 1997년의 국가부도위기는 분배구조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경쟁과 능력주의의 압박을 받으며 사회의 관계망도 끊어져 변화를 모색하기도 쉽지 않았다. 풀뿌리는 기득권 중심의 사회구조를 무너뜨리고 주요한 결정과정에서 배제되어온 사람들이 경험과 역량을 쌓고 나누며 함께 사회의 주체로 나서자는 전략이었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마을이나 공동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기였지만, 당시에도 풀뿌리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은 강했다. 민주주의라는 말조차 거북해하던 행정이 풀뿌리를 언급하기는 어려웠고, 시민들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무슨 수로 엘리트에 맞서느냐며 회의감을 드러냈다. 시민운동의 위기가 얘기되면서 풀뿌리란 말이 잠깐 등장하긴 했으나 선택과 집중이라는 노선에 금방 밀려났다.

그런데 요즘은 풀뿌리 지역사회, 풀뿌리 기부문화, 심지어 풀뿌리 창업이란 말까지 나온다. 행정과 단체를 가리지 않고 지역이나 작은 규모의 활동에는 풀뿌리란 말이 수식어처럼 따른다. 이렇게 퍼지게 된 데는 사람들의 노력 덕이 크다. 아래로부터 세상을 바꾸겠다던 사람들이 꾸준히 행정과 중간지원조직에 참여하며 말을 써왔기 때문이다.

말만 유행했지 변혁의 전략은 못 돼

그렇지만 권력구조나 자원을 조직하는 방식은 지금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원을 조직하며 우리의 기반을 강화시킨다는 전략은 희미해지고,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능력을 의심받는 세상이 되었다. 관계를 믿고 조직하는 사람들보다 그럴싸한 기획서를 쓰는 사람이 대우를 받는 시대에 풀뿌리의 유행은 기이한 풍경이다. 작고 감동적인 사례들이 부패한 기득권 구조와 공존하는 경우도 보인다.

시민의 역량을 기르자는 주장들도 늘어났기는 하다. 그렇지만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역량강화 프로그램들은 역량이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우리가 선 공통의 세계를 이해하고 개입할 역량보다는 사업수행을 위한 기술에 가까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로의 능력에 주목하며 인정받는 능력의 경계를 허물어야 하는데, 요구되는 조건들만 늘어났다. 뿌리들이 엉키며 서로를 지지해야 하는데, 서로 경쟁하기에 바쁜 풍경도 보인다. 그러니 말은 유행해도 풀뿌리는 세상을 바꾸는 전략이 되지 못했다.

국민의힘이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제도권에서 물러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다시 지역에서 시작하자는 다짐도 보인다. 그러면 풀뿌리의 전략도 다시 힘을 얻을까? 그럴 가능성은 낮다. 풀뿌리라는 수사를 쓴들 그 힘과 속도를 실제로 믿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다시 권력을 잡을 날을 기다리는 것이 빠르지 때론 권력마저 포기하며 그 힘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있으나 권력에 비판적인 사람은 적고, 불평등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있으나 아래로부터 평등을 쌓아올릴 사람은 적다. 자본주의나 체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드물게 외쳐지지만 구호와 현실의 간극을 메울 방법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기득권의 이해관계는 점점 강화되어 가는데, 정작 시민들은 결집의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동안 촛불집회가 계속 있었는데 왜 결집의 힘을 잃어간다고 말할까? 한국사회가 역동적인 것은 맞지만 수많은 사건들의 흐름 속에서 그 역동성은 흩어지기 쉽다. 단체 없이 개인들의 연합이 힘을 발휘할 때도 있지만 단체가 필요한 영역도 있는데, 이제 새로운 결사는 매우 어려워졌다.

풀뿌리가 해답은 아니지만

결집 속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개인화된 다름은 서로 만나지 않아도 될 명분이 되었고, 능력 있으면 알아서 하겠지라는 냉소를 자아낸다. 서로 얽혀서 세상을 바꾸기엔 지쳤고 이젠 상처를 더 받기 싫다는 마음이 강하다. 살아남아야 존중받는 세상에서 무슨 풀뿌리 타령인가 싶다.

그럼에도 나는 풀뿌리의 전략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위로 올라가면 되는 게 아니라 위계를 뒤엎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직 쓸모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닥쳐올 여러 위기들에 대응하려면 우리의 조직된 힘이 필요하다. 타협이 결탁은 아니듯, 불화가 무조건 싸우자는 것도 아니다. 필요하면 제도를 활용해야 하지만 우리의 힘을 조직해야 그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잡초처럼 끈질기게 조금 더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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