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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입력 2022.07.19 03:00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좁은 철창을 간신히 삐져나온 목소리가 숨막히게 더운 공기를 뚫고 전해졌다. 이대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인 듯 이대로 살지 말자는 제안인 듯 육중하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파업 중인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의 목소리다. 부지회장 유최안이 22년 경력의 용접기술로 자신을 가두고, 여섯 명의 노동자가 탱크 탑 구조물에 올라 고공농성을 한 지도 한 달이 되어간다. 14일부터는 산업은행 앞에서 세 명의 노동자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어떤 선언이고 어떤 제안이길래.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는 임금 30% 인상과 노동조합 인정이다. 30이라니, 튀는 숫자다. 물가상승률이나 기업의 영업이익 등을 고려해 소수점 아래까지 붙이는 임금인상 요구안과는 꽤 다르다. 뜻이 있겠거니 싶다. 노동조합은 인상이 아니라 원상회복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업이 위기였던 2010년대 중반 이후 임금은 오르지 않고 상여금은 사라져 손에 쥐는 돈이 30%나 줄었다고 한다. 먹고살기가 얼마나 곤혹스러웠을지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선명한 숫자를 내걸며 회복하고 싶은 것이 임금만은 아닌 듯하다.

노동자들의 이야기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일하러 오지 않는다”는 걱정이 곧잘 나왔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모처럼 수주량이 크게 늘었는데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기업이 할 법한 말이니까. 조선업 노동자 수는 2010년대 중반과 비교해 절반 수준이다. 구조조정으로 해고되어 떠난 사람들은 일감이 생겨도 돌아오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들도 찾아오지 않았다. 기업은 아웃소싱 업체를 만들어, 정부는 이주노동자 고용을 확대해 풀어보려고 한다. 노동자들은 달랐다.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일, 떠나고 싶지 않은 일이 되게 하고 싶다. 누군가 이 일을 배워서 이어주면 좋겠다. 기업이 아무렇게나 내버린 존엄을, 일에 대한 긍지를, 노동자들은 임금과 함께 회복하고 싶다.

정부는 파업 노동자들에게 점거를 풀라고 한다. 경제가 위태롭다며. 사실이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경제 전망이 갱신될 때마다 성장률 전망치는 낮아지고 치솟는 물가는 아찔하다. 거슬러가면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지속된 문제다. 배 만드는 노동자들은 그걸 온몸으로 겪었다.

조선업은 세계 경기에 특히 민감하다. 배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산업의 경기나 환율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호황과 불황 사이의 변동 폭도 크다.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가 2010년대 중반 한국 조선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이어진 이유다. 2000년대 들어 세계 최고의 위상에 이른 한국의 조선업도 기술만으로 세계 경제의 풍랑을 헤쳐나갈 수 없었다. 조선업 자체가 거대한 바다에 떠 있는 무거운 배와 같다. 외부 환경에 따라 서서히, 그러나 크게 출렁거린다. 그때마다 하청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튕겨나갔다. 위험에 내몰려도, 일감이 없다며 내쫓아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더 익숙했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나며 달라졌다. 그들은 자신의 일과 삶을 귀히 대하기로 했다.

거제에서 전해진 목소리가 내게는 이렇게 들린다. ‘우리 모두 풍랑을 만난 배에 있습니다. 키는 우리가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어진 세계 안에 자신을 욱여넣던 시간과 헤어지자는 제안. 채워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지켜야 할 것과 끊어야 할 것을 우리가 분간하며 가자는 제안. 쉽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어디에 발 딛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지금, 삶을 지킬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배의 바닥에 단단히 붙박은 유최안의 철장은 이 세계의 흔들림을 온몸으로 마주하겠다는 각오인지도 모르겠다. 21일 발표될 인권보고서, 23일 출발할 희망버스가 제안을 보탠다. 함께 흔들리며 지키는 자리에서 새 땅이 다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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