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좀비 아이디어

이용욱 논설위원
할리우드 좀비영화 <새벽의 저주> 스틸 컷

할리우드 좀비영화 <새벽의 저주> 스틸 컷

좀비는 ‘살아 있는 시체’다. 무리 지어 돌아다니며 멀쩡한 사람까지 전염시키는 기괴한 존재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9년) 이후 할리우드 공포장르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날뛰는 특성 때문에 현실 상황에서도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가령 정치권에선 정치적으로 심판당했음에도, 기세등등한 정치세력을 두고 ‘좀비정당’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실패가 입증됐음에도 좀비처럼 살아남아 사회를 좀먹는 생각과 정책을 일컫는 ‘좀비 아이디어’가 부각되고 있다. 이 개념을 제시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 시립대 교수는 미국 보수우파들의 ‘감세 옹호론’ ‘기후변화 부정론’ ‘코로나19 부정론’ 등의 좀비 아이디어가 “사람들의 두뇌를 갉아먹는다”고 비판한다.

크루그먼 교수의 저서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가 최근 국내에 번역·출간됐다. 크루그먼은 부자감세 옹호론을 “가장 끈질긴 좀비”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비롯한 공화당 정부들이 부자·대기업 세금을 줄여주면 경기가 부양돼 저소득층·중소기업에 혜택이 돌아간다는 낙수효과를 근거로 정책을 폈지만 재정악화와 불평등 심화만 초래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거짓말이며, 기후변화 대응조치가 경제 성장을 망친다’는 기후변화 부정론을 두고는 “논리도 증거도 전혀 없다”고 질타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감기처럼 대수롭지 않다며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 대책을 두고 “엄청난 참사였고, 다 좀비 탓”이라고 했다.

크루그먼의 시각으로 보면 윤석열 정부 정책에도 좀비 아이디어들이 적지 않다. 정부는 25%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낮추고, 종합부동산세 기준을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완화하겠다고 밝혀 부자감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난에 타격받는 건 서민인데, 대기업과 고소득층 세금을 낮춰주는 것으로 경제를 살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도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해 노력하는 선진국의 흐름과 역행한다. 크루그먼은 “좀비 아이디어와 사상을 밝혀내 무덤 속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책을 썼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흘려듣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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