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등 정부 부처가 합동으로 19일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을 발표했다. 향후 10년간 반도체 인재 15만명을 육성하겠다는 것인데, 핵심은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2000명 증원이다. 특히 그동안 엄격하게 정원이 통제된 수도권 대학에서만 1300명의 대학 입학 정원을 늘리기로 했다. 학과를 신·증설하려면 교원(교수)·교사(건물)·교지(땅)·수익용 재산 등을 갖춰야 하지만 반도체 학과는 교원 확보율 외 규제를 모두 풀었다.
한국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을 위해 그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증원은 부작용이 크다. 지방 대학들은 벌써부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 정원이 늘면 지방대는 학생 모집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 관련 학과에 ‘계약정원제’를 허용한 것도 수도권 대학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채용을 조건으로 기업과 계약해서 정원을 늘릴 수 있는 지방대가 과연 몇 곳이나 되겠는가. 수도권 대학들이 정원 제한 규제를 피할 수 있는 편법을 교육부가 제공한 셈이다. 교육부는 지방대의 반도체 학과 정원도 늘리겠다고 했지만 지방대는 반도체 분야 연구·교육 인프라 부족으로 기존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수도권 쏠림·지방 소멸’의 악순환을 끊겠다”고 약속했다.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학과 정원 증원은 이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지금이라도 지방대를 중심으로 학사급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고, 석·박사급 인력은 수도권대에 맡기는 방안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같은 최첨단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지방대에 더 많은 기회를 준다면 수도권 집중 완화와 국토의 균형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이 시간에 쫓기듯 급하게 이뤄진 것도 문제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7일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인력 양성을 강조하자 교육부는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불과 42일 만에 이번 정책을 내놓았다. 교육부가 반도체 인력 수요 증감 등을 제대로 분석하고 예측했는지도 의문이다. 한정된 인적 자원을 반도체에 집중 투입했다가 향후 반도체 업황이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수도권 대학 증원은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하책 중의 하책이다. 교육부가 고민 없이 너무나도 쉬운 방법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