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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는 노인과 제지회사

입력 2022.07.22 03:00

수정 2022.07.2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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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목록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바람난 애인의 뒤통수 치던 행동, 블록체인 열풍,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 단지 등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 목록에 제지회사 주식도 추가하고 싶다. 온라인 배달 사업이 쭉쭉 성장한 덕에 택배상자와 종이 포장재 시장 역시 조용하고도 건실하게 떴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쓰레기 ‘덕후’인 나는 주택가의 재활용 분리수거가 얼마나 엉망인지 잘 알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분리배출이랍시고 검정 비닐봉지에 죽은 고양이, 똥 묻은 기저귀 등을 몰래 버린다. 그런데 주택가 재활용 분리배출 중 유일하게 아파트보다 나은 품목이 딱 하나 있다. 바로 폐지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은 택배상자에 붙은 테이프를 면도칼로 뜯어내 상자는 상자끼리, 책은 책끼리, 복사지는 복사지끼리 폐지를 종류별로 분류한다. 고물상에서 폐지 종류별로 가격을 달리 쳐주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는 계약한 수거업체가 폐지를 섞어서 실어가므로 질 떨어지는 혼합 폐지가 된다. 최근 환경부는 환경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폐지 줍는 분들을 자원재생활동가로 명명하고 안전장비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폐지 수집 노인과 자원순환’ 집담회에 다녀왔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는 답답했다. 실버자원협동조합을 만들어 폐지 수집 어르신을 위한 동네 안전망을 제공하거나, 폐지를 비싸게 사들여 상품을 제작해 폐지계의 공정무역을 일군 현장의 혁신가들은 이제는 ‘재활용품 수거 노인 지원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반대로 이분들만 따로 지원하는 정책은 취약계층 지원책과 중복되고 자원재생 명목이라면 고물상과 트럭형 전문 수거업자까지 지원할 것인지 의견이 갈렸다. 법을 새로 만들기보다 기존의 지자체 폐지 수거인 지원 조례를 손보자고도 했다.

방법은 달랐지만 모두 한마음이었다. 왜 허리도 못 펴는 어르신들은 오밤중에 폐지를 줍는데도 그토록 가난하단 말인가. 제지회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제지회사는 골판지, 신문용지 등의 원료가 되는 폐지를 구입해 재활용한다. 수년 동안 내로라하는 제지회사들은 폐지 구매단가를 ㎏당 30원씩 내리고 종이값은 40% 올려받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벌금을 받았다.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한 제지회사는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의 약 1.3%만을 벌금으로 냈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은 폐지 1㎏당 약 60~120원을 받으므로 30원은 결코 적지 않다. 이쯤 되면 대기업이 동네 폐지 줍는 노인들 몫을 가로채는 잔혹한 이야기이다.

나는 ‘재활용품 수거 노인 지원 법률’ 제정이든 기존 조례 개정이든, 뭐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전에 공정거래법이 지켜지고 재활용품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면 최저가격을 보장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이에 더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로 모인 돈이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가장 끝단의 수거업자들을 지원하는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종류별로 분리수거하는 과정 없이 제대로 된 재활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전에 제지회사 주식을 샀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폐지를 줍게 되었을 때 내 노동의 가치를 존중받고 합당한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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