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28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정조대왕함 진수식에서 진수 도끼로 진수선을 자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새 배를 물에 띄우는 진수(進水)식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안전 항해를 기원하는 상징물·징크스가 많고, 그 유별난 의식은 동서고금이 다를 바 없다. 샴페인병을 선체에 부딪쳐 깨는 것은 중세 북유럽 바이킹족이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포도주를 따르던 데서 유래됐다. ‘갓마더(대모)’라 불린 여성이 금도끼로 진수줄을 자르는 전통은 19세기 초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시작했다. 탯줄을 자르듯 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의례였다. 영어에서 배를 대명사로 받을 때 ‘She(그녀)’로 칭한다. 한국에서도 배의 진수줄은 여성이 자른다. 대통령 부인으로는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대형 유조선으로 첫 테이프를 끊었고, 여성 대통령은 2013년 김좌진함(잠수함)을 진수시킨 박근혜씨가 유일하다. 적·백·청 리본을 달아 비둘기를 날리는 미국이나 은도끼로 줄을 자르는 일본과 달리, 한국 배의 진수는 영국풍에 가깝다.
진수식에선 배 명명(命名)식도 치러진다. 한국 군함 이름엔 나름의 규칙이 있다고 한다. 구축함은 이순신·세종대왕함처럼 추앙받는 역사적 인물로 부른다. 호위함은 광역시·도나 도청소재지를, 초계함은 ‘천안함’처럼 중소도시명을 쓴다. 상륙함은 한국전쟁 때 탈환한 산봉우리나 명산을 붙이고, 고속정엔 참수리 같은 새 이름을 쓴다. 창군이래 군함명에 붙는 인물의 99%는 남성이고, 여성은 2015년 진수된 유관순함(잠수함)뿐이다. 진수식은 배 이름에 여성이 많은 영국 전통을 따르면서도, 존경할 여성 명사·독립운동가도 많은 한국에서 배 명명은 다른 셈이다.
28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4번째 이지스구축함 ‘정조대왕함’ 진수식이 열렸다. 진수줄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끊었다. 그의 등장에 눈길 쏠린 이유는 또 있다. 대통령 스페인 순방에서 ‘민간인 동행’이 시비된 지 한 달 만에, 수사받는 도이치모터스의 회장 아들이 대통령 취임식 VIP석에 앉은 논란이 커지던 중 공식행사에 나타난 것이다. 일회성인지, 대중활동 복귀인지는 알 수 없다. 때마침, 설화를 일으킨 김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 대표는 이날 “개가 짖어도 새벽이 온다”며 사퇴했다. 대통령도 “처음 해봐서 모르겠다”던 부인의 활동이 매번 뉴스·구설이 되는 비정상적 상황은 언제나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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