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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주요한 방식은 범주화이다. ‘나와 그들’이라는 간단한 구분부터 ‘종속과목강문계’라는 체계적인 분류까지, 우리는 수많은 범주를 만들어 복잡한 세상을 협소한 인식 틀에 구겨 넣는다. 그리고 “세상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범주화는 많은 경우 자기중심적인 위계질서와 맞물려 작동한다. 예컨대 ‘나와 그들’이라는 범주화는 나와 다른 ‘그들’을 상정하고, 그들이 내 삶에 잠재적 위협인지를 가늠하려는 시도이다. 어떤 이는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다른 이는 ‘그들’의 공격을 피해 숨어든다. 동성애자, 노인, 맘충, 사배자, 이대남, 자폐 등 수많은 범주화가 날마다 끝없이 생성되며 사회의 질서와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신체적, 정신적, 혹은 물신적) ‘장애’를 가진 집단을 찍어낸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장애’는 흔히 신체적 개념으로 인식되지만, 본질적으로 사회적 개념이다. H G 웰스의 단편소설 ‘눈먼 자들의 나라’를 예로 들어보자. 거주민 모두가 맹인인 고립된 마을에 앞을 볼 수 있는 한 남자가 사고로 들어선다. 그곳 사람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특별하게 발달한 청각과 촉각으로 세상을 이해하며 살고 있다. ‘맹인 마을에서는 애꾸눈이 왕’이 될 거라는 남자의 예상과 달리, 사람들은 그를 시각을 가진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다른 감각 발달이 현저히 느린 장애인으로 인식한다. 또한 신경인류학자 올리버 색스가 <소리를 보았네>에서 보여주듯,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수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장애인이다. 이처럼 ‘장애’는 특정한 신체적 능력 속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회 속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한국 도시 공간의 속도는 수많은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만든다. 대중교통, 수영장, 공원의 자전거 도로와 같은 공공 시설에서조차, 우리는 사람들이 빠르게 이동하기를 기대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 해당 공간에 진입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 속에서 걸음이 느린 노인, 아이와 함께 이동하는 엄마, 휠체어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정상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장애인이 된다. 하지만 흐름의 속도를 조금 늦춘다면, 이들은 모두 이 공간에 ‘비장애인’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점에서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가는 감각과 능력이 결핍된 장애인이라 말할 수 있다.

사회적 범주에 비해 ‘종속과목강문계’와 같은 자연과학적 분류는 더욱 쉽게 객관적이고 고정적인 범주로 인정받는다. 이러한 인식에 반하여, 룰루 밀러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물고기’라는 범주가 물에 살고 있다는 표면적인 사실만을 가지고 구성한 허구임을 밝힌다. 그에 따르면, 물고기라는 범주는 산에 사는 생물들을 모두 ‘산고기’라고 범주화한 것과 마찬가지다. 즉, 표면적인 특성에 속아서 그 안에 존재하는 차이들과 특성을 보지 못한 것이다. 유사하게 우리는 일상에서 사람들을 성, 나이, 인종, 성별, 장애 등의 표면적 특징으로 묶어서 분류하고 인식한다. ‘물고기’라는 범주가 다른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하기보다 저해하듯, 이러한 사회적 범주 또한 그러하다.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대중적 주목을 받으며 장애인에 관한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표면만 보지 말고 그 안에 존재하는 다른 특성을 볼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드라마를 둘러싼 논의들은 여전히 우영우의 표면적 특징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우영우가 어떠한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어떠한 네트워크가 우영우를 ‘비범한 사람’으로 만드는지, 어떠한 네트워크가 우영우를 사회에서 격리될 사람으로 만드는지이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듯,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장애인을 만들어내는 네트워크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어떤 네트워크를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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