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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최전선, 김순호

입력 2022.08.12 03:00

최전선은 적과 가장 가까운 전장이다. 전투에서 최전선이 없으면 전진할 수 없고, 최전선이 버텨야 뒤로 밀리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최전선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정치적 의미의 최전선은 과거가 침범 못하게 막고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이 최전선이었다. 뒤로 밀리진 않았지만 대전환 시기를 헤쳐나가진 못했다. ‘다음’에 대한 기대가 윤석열 정부를 낳았다.

구혜영 정치에디터

구혜영 정치에디터

그러나 지금 최전선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어디에 깃발을 꽂고 싸워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콩자루가 터져 여기저기 콩이 난무하는데도 뭐부터 쓸어담아야 할지 허둥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20%대가 이를 시사한다. ‘매우 잘못했다’는 의견이 30%대인 조사 결과도 있다. “선거는 내가 좋아하는 인물을 고르면 된다는 의미에서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행위와 같다. 둘 사이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물건을 잘못 사면 피해는 구입자에게 귀속되지만 선거는 그 인물을 택하지 않은 타인에게 돌아간다.” 사회학자 욘 엘스터의 말이다. 그도 미처 짚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 인물을 선택한 사람에게도’ 피해가 돌아가고 있다. 부정평가 30%대는 지지층도 등 돌린 결과다. 혹자는 윤석열 정부를 ‘이명박 시즌 2’라고 한다. 나쁜 정치이지만 이명박 정부는 개발·자본 중심이라는 지향은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그마저도 없다. 그러니 인사니, 정책이니, 리더십이니 쇄신의 우선순위를 매겨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 상황에 경찰국이 등장했고 김순호 치안감이 경찰국장에 임명됐다. 둘 사이에 어른거리는 말. 검찰 통치, 권위주의, 프락치, 고문, 대공…. 가혹했던 시절은 민주화 30년이 지나도록 막아도 막아도 밀려오는 파도여야 하는지. 한 뼘 한 뼘 쌓아올린 우리의 최전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경찰국은 졸속 신설부터 경찰 통제, 치안본부 회귀 논란 속에 출범했다. 정부는 경찰국 출범을 ‘법적 시스템을 갖춘 경찰 통제, 경찰 운영 정상화’라고 밝혔다. 이 기능이라면 경찰위원회가 맡기로 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합의·의결기구인 경찰위원회를 ‘자문기구’로 격하하며 경찰국 신설을 밀어붙였다. 행정안전부 장관의 치안 업무, 경찰 인사 제청권이 가능한 길도 열었다. 윤석열 정부는 검찰이 정치권력을 직접 장악한, 검찰이 몸통인 정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경찰국 신설은 무엇을 말하는가.

정부 방침대로라면 경찰국장 자리엔 인사·기획통이 적임자다. 대신 보안통 김순호 치안감이 발탁됐다. 그는 동지를 밀고한 대가로 출세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인물이다. 그의 일생엔 밀고, 프락치라는 국가폭력의 그림자가 배어 있다. 그는 의혹을 부인하고, 일각에선 그의 입직을 사상전향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33년 전 인노회 조직책 김순호를 대공 특채한 담당관까지 밝혀졌다. ‘김순호 경찰국장’ 문제를 사상전향 차원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독재정권은 민주화운동 세력의 도덕적 결함을 집권 명분으로 삼았다. ‘너희나 우리나 똑같다’는 프레임은 권위주의 통치의 면죄부였다. 어느 쪽도 비난할 자격을 갖지 못하게 했고, 이는 공동체 가치를 파괴하는 민주주의 후퇴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당해보라’는 말이 잦아졌다. 시민성을 잃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다. 이 역시 후퇴다.

김순호 경찰국장 임명이 낡은 시대의 사슬에서 풀려나지 못한 심정을 갖게 했다면 과도한 우려일까. 역풍도 긴 역사의 맥락에서 보면 순풍이라고 하지만 당장 맞서야 하는 처지에선 역풍은 역풍일 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최전선을 만들지 못하고, 이미 지나온 최전선까지 없애버린다면, 할 수 없다. 우리가 최전선을 만들 수밖에.

수도 서울이 폭우에 잠겼다. 신림동 반지하방에 살던 노동자 가족이 수마에 쓰러졌다. 윤 대통령은 왜 대피가 안 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왜 구하지 못했죠”라고 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망언과 흡사하다. 심지어 참사 현장을 국정홍보용 포스터에 담았다. 수해는 삶의 높낮이를 드러내는 가장 계급적인 재난이다. 지상에 방 한 칸 내는 게 소원이었을 가난한 삶은 왜 죽음까지 가볍고 낮아야 하나. 인간에 대한 존엄은 정치가 마지막까지 사수해야 할 최전선이다. 그게 사라진 지금, 나는 어떤 세상을 원하고 당신은 어떤 나라를 원하는지 스스로 묻고 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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