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제의 ‘경계인’
2020년 3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선언 이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했다(지난 5월 한국행은 여행이 아닌 ‘방문’이었다). 2019년 토론토 사는 어느 선배가 기획했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미룰 수밖에 없었던 이탈리아 북부 여행이었다. 올해 초 이 여행을 여름에 다시 추진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당시만 해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한창 위세를 떨칠 무렵이어서 무엇을 계획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알프스산맥 남쪽의 ‘돌로미티’ 트레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워낙 매력적인 여행이어서 한편으로 기대가 되기는 했다. 여행을 기획한 선배는 매주 토요일 캐나다 브루스트레일을 수십㎞씩 걷는 트레킹 마니아여서, 3년 전 좌절된 돌로미티 트레킹에 대한 열망이 남달랐다.

이탈리아 베니스공항의 승객들. 우리 일행 외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공항은 팬데믹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온 듯 보였다.
소식을 들어보니, 유럽은 북미보다 코로나19로 인한 규제가 더 빠르게 풀리는 것 같았다. 지난봄 런던과 로마, 피렌체를 여행한 토론토의 젊은 지인은 “그곳 사람들은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닌다”고 했다. 내가 사는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3월부터 규제를 하나씩 풀던 참이었다. 해외 입국자에 대해 유전자증폭(PCR) 검사는 물론 신속항원검사(RAT) 확인서도 요구하지 않았다. 일반 시민들은 코로나19 증상이 있어도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보건당국은 감염이 확인되면 5일간 스스로 알아서 격리하라고 권고만 했을 뿐이다.
미뤘던 이탈리아 북부 여행 감행
유럽은 북미보다 빠른 리오프닝
마스크 없이 활보, 느슨해진 규제
개인방역 실천이 되레 뻘쭘할 지경
일상으로 돌아간 듯한 유명 관광지
하지만 상가 곳곳에 문 닫은 상점
붐비지만 외국인 관광객 드물고
넘쳐나던 중국인들도 보이지 않아
더 큰 문제 안고 있는 항공 시스템
일행 중에도 수하물 실종으로 낭패
해고했던 필수인력 채워지지 않아
선진국 공항도 별 수없이 아수라장

베니스를 찾은 관광객들. 사람들이 많아 보였으나 예전의 60%를 회복한 수준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실내 공간은 물론 지하철과 버스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잇달아 발표했다. 그래도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쓰며 조심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코로나19 규제를 많이 풀었다고는 하지만, 유럽에 비하면 여전히 엄격한 듯했다. 유럽 분위기가 이곳보다는 다소 느슨하다고 하니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4월 “가기로 결정했다”는 선배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바로 참가 신청을 했다.
캐나다에서 다른 나라에 갈 경우, 나라마다 다른 입국 조건도 중요하지만 캐나다로 돌아올 때의 입국 조건 또한 해외여행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이다. 캐나다에 입국할 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다른 점을 꼽자면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ArriveCan’이라는 새로운 입국신고서를 온라인으로 작성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ArriveCan은 ‘고열이 있느냐’ 같은 질문을 추가했고 백신 접종 확인서를 요구한다. 백신 3차 접종 확인서만 있으면 어떤 입국 규제도 받지 않는다.
베니스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입국 규제는 캐나다보다 이탈리아가 훨씬 더 느슨했다. 두 나라에 비하면, 백신 접종과 비행기 탑승 24시간 전 ‘공인 신속항원검사’를 요구하는 한국은 규제가 대단히 강력한 셈이다. 이탈리아는 7월 들어 입국자들이 백신 접종 확인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마저 폐지했다고 했다. 입국 절차는 더없이 간편했다. 여권을 제시하고 얼굴 사진만 찍으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토론토 피어슨공항에서나 에어캐나다 기내에서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으나, 베니스공항에서는 우리 일행 말고는 마스크 없이 오가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유럽을 다녀온 사람에게서 들은 그대로였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벨루노라는 도시의 분위기는 돌로미티 근처여서 그런지 더 느슨한 느낌이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 운전기사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호텔 직원들도 마스크에 별로 집착하지 않았다. 평상시처럼 손님을 맞는 모습이었다.
도착 이튿날부터 시작된 돌로미티 트레킹 중에는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지만 좁고 밀폐된 공간인 케이블카 안에서도 사람들은 코로나19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실내에서 열심히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우리 일행뿐이었다. 2500m가 넘는 산의 정상이나 중턱 휴게소들은 음식을 사 먹거나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로 한결같이 붐볐다. 음식과 음료를 사려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보면 일상을 어느 정도 회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미켈란젤로의 대표적인 작품인 다비드 상을 보려는 관람객들로 크게 붐볐다. 마스크를 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흘에 걸친 돌로미티 트레킹 일정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이탈리아 북부 도시들을 돌아다녔다. 기울어진 종탑으로 유명한 피사에서는 바깥에서만 구경했으니 마스크를 당연히 착용하지 않았다. 바깥은 물론 건물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없으니, 나도 점차 그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마스크를 챙기지 않아도 사람들이 많은 실내 카페나 화장실에 들어가는 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실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것은 팬데믹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술관과 성당들로 유명한 피렌체에서는 실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체감온도가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에 냉방마저 잘 안 되는 곳에서는 마스크를 쓰기가 쉽지 않았다. 마스크 착용을 더 주저하게 한 것은 더위보다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우피치 미술관이나 아카데미아 미술관 안에서는 오히려 마스크를 착용한 관람객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미술관이나 식당, 커피점을 돌아다니면서 마스크를 착용하면 오히려 ‘뻘쭘’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탈리아에서 보낸 단 며칠 동안 나는 어느새 이런 대세에 익숙해졌다. 팬데믹 선언 이후 처음 겪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공공장소에서 거부감 없이 마스크를 벗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어서 신기하기까지 했다. 물론 우리 일행 중에는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에서나 마스크를 열심히 착용하는 이들이 있기는 했다.
돌로미티에서는 이탈리아 사람들 외에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을 별로 보지 못했다. 사흘 동안 내가 만난 외국 관광객이라고는 독일 가족과 일본에서 온 젊은 부부밖에 없었다. 피사나 피렌체, 베니스 같은 유명 관광 도시를 돌다 보니, 영어나 불어 같은 외국어들이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시들은 많이 붐볐다. 우피치 미술관은 예약을 미리 할 수 있어서 쉽게 들어갔지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볼 수 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입장권 사전 예약이 일찍 마감돼 바람 한 점 없는 좁은 골목의 무더위 속에서 땀을 줄줄 흘려가며 40분가량을 서서 기다렸다. 산타마리아 델 피에로 대성당(두오모) 돔에 올라가는 것은 줄이 길어서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 피렌체공항 한 켠에 쌓여 있는 주인 잃은 수하물들. 누구의 가방인지 등록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서 주인을 제대로 찾아갈 수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팬데믹은 팬데믹이었다. 유명 도시들이 아무리 관광객들로 붐비고 마스크 쓴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해도, 예전과는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팬데믹 이전에 세계 유명 관광지를 휩쓸고 다니던 중국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로마, 베니스, 나폴리 등 이탈리아 유명 도시로 오는 중국발 직항 비행 편이 모두 끊겼다고 했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도 식당에서 두어 번 마주친 것이 전부였다. 몇 년 전 동유럽을 여행할 당시 분위기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우리를 인솔한 한국인 여행 가이드(‘카루소’라는 이탈리아 이름을 사용했다)에 따르면, 규제가 많이 풀렸다고는 해도 한국 관광객은 지금 예전의 10분의 1밖에 오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관광객을 주로 상대하던 식당들은 문을 닫은 곳이 많고 그나마 남은 곳은 주인이 직원을 쓸 수 없거나 필요할 때 구하지 못해서 애를 먹는다고도 했다.
붐비는 것으로 보자면야 유명 관광지들은 팬데믹 이전 일상으로 많이 돌아간 듯한데(여행 가이드에 따르면 예전의 60% 정도 회복) 팬데믹 몸살을 여전히 앓는 곳들도 있었다. 바로 항공사와 공항이다. 토론토 피어슨공항에서는 비행기로 부친 짐을 찾지 못해 몇 달 전부터 ‘대란’이 벌어졌고 지금도 수습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도에 따르면, 에어캐나다가 팬데믹 기간에 직원들을 해고하고 해외 여행객이 급증한 지금 인력 충원을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승객들이 수하물을 잃어버리는 등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일행 중에서도 수하물을 부친 이들은 큰 낭패를 보았다. 부치는 비용으로 가방 1개당 75캐나다달러(약 7만6000원)를 받으면서도 서비스는 최악이었다. 베니스공항에서 우리 일행은 2시간 동안이나 짐이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결국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에 수하물이 아예 실리지 않았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머무는 호텔들의 이름을 적어주고 가방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여행을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오는 날에도 짐은 도착하지 않았다. 여행 중간에 수하물이 피렌체공항에 있을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급히 달려갔으나 수백 개가 무질서하게 쌓인 모습만 보았을 뿐 우리 일행 것은 결국 찾지 못했다. 수하물들은 제대로 등록되지도 않아 우리 것이 거기에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그곳에는 한 달 만에 짐을 찾으러 왔다는 승객도 있었다. 게다가 공항 관계자들은 자기들끼리 약속이나 한 듯 한결같이 불친절했다. 여행 가방을 받지 못한 우리 일행들은 여행 기간 내내 고생을 해야 했다. 돌아오는 날 베니스공항에서 확인해보니 짐들은 스위스 취리히에 가 있다고 했다. 이 사건은 중간에 갈아타는 비행기에 수하물을 옮겨 싣지 않고 이륙한 항공사 에어캐나다와 뒤늦게 도착한 가방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리기만 한 이탈리아 공항의 합작품이다.
이번 여행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었다. 토론토에서 내가 자영업에 종사해서 그럴 것이다. 피렌체나 베니스 같은 그 대단한 관광지에서도 팬데믹 영향으로 문을 닫은 가게들이 더러 있었다. 가게에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수심 가득한 얼굴로 가게 입구에 나와 서 있는 주인들도 눈에 띄었다.
이런 사람들과는 반대로, 수하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서 여행객을 골탕 먹이는 항공사와 공항들은 팬데믹 기간에 해고한 필수 인력 채용을 뒤로 미루면서 팬데믹 상황을 오히려 이용하는 듯이 보였다. 여행객이 폭증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 숫자가 팬데믹 이전의 6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주장은 핑계이자 변명으로 들렸다. 있을 수 없는 횡포를 부리고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항공사나 국제공항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지금 보아서는 가방을 받지 못해 겪어야 했던 여행자들의 불편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나아가 유럽에서 사라진 가방이 토론토로 돌아올지도 확신할 수 없다. 피렌체공항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잔뜩 쌓여 있는 분실 수하물들은 몇 개월 후에라도 과연 주인을 찾아갈 수나 있을까.
![[다른 삶]팬데믹 이후 첫 해외여행…코로나, 잦아든 것 같지만 일상은 여전히 몸살](https://img.khan.co.kr/news/2022/08/12/l_2022081301000516500054535.jpg)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