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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

입력 2022.08.15 03:00

수정 2022.08.1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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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마을에 서울 손님이 왔다. 3년째 지구촌 돌림병(코로나19)으로 마음 놓고 오가지도 못하다가, 3박4일 겨우 짬을 내고 용기를 내어 왔다. 더구나 서울과 합천은 큰마음 먹어야만 오갈 수 있는 거리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사나흘 전부터 귀한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그 손님이 누구냐고? 여섯 살 손자 ‘서로’다. 이름은 ‘로’인데 성을 붙여 그냥 ‘서로’라 부른다. 서로 혼자 온 것은 아니다. 서로 엄마도 같이 왔다. 서로 아빠는 일터에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둘이만 왔다.

서정홍 농부 시인

서정홍 농부 시인

서로 엄마는 눈이 불편한, 정확하게 말하자면 1급시각장애인이다. 서로는 엄마 손을 꼭 잡고 서울 마포구 성미산 아래에서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케이티엑스를 타고 대구역으로, 대구역에서 다시 합천 황매산 자락까지 무사히 왔다. 여섯 살 아이와 눈이 불편한 엄마가 이렇게 먼 거리를! 놀랍기만 하다. 서로 엄마는 서로한테 할머니 할아버지와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용기를 내어 왔단다. 어찌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들지 않으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서울 촌놈 서로가 왔다는 소문이 여기저기 퍼졌다. 이웃 마을에 사는 청년 농부 구륜이가 쌀자루를 등에 메고, 집에서 키우는 토종닭 두 마리를 들고 왔다. 은실님은 바쁜 농사일 제쳐두고 일일이 간식을 챙겨 주고, 하루네는 손수 농사지은 토마토 한 소쿠리에다 팥빙수까지 만들어 주었다. 이랑이네는 옥수수를 삶아 주었고, 아랫집 선미네는 집에서 우리밀 빵을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 왔다. 그리고 마을 할머니가 “산골에서 오랜만에 귀한 거 보았다야. 그냥 보믄 안 되지. 안 되고말고” 하면서 꼬깃꼬깃 넣어둔 만원짜리 한 장을 주셨다. ‘귀한 거’라는 말은 손자 서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워낙 아이들 보기 어려운 산골이라 가끔씩 아이들이 보이면 ‘귀한 거 보았다’며 좋아하신다.

6년 전 어느 날, 셋방살이하며 애써 키운 큰아들이 앞이 보이지 않는 아가씨 손을 잡고 혼인을 하겠다며 찾아왔다. 비록 앞은 보이지 않지만 성격이 밝고 착하다며 힘주어 말했다. “아버지, 앞이 잘 보이는 제가 한평생 ‘눈’이 되어 살겠습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손자가 태어나고 어느덧 여섯 해가 지났다. 산골 젊은 이웃들은 그 사연을 안다. 그래서 자기네 식구처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더구나 윗마을에 사는 열 살 이랑이와 효준이는 학교 방과후 수업도 안 가고 서로와 같이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놀아주었다.

서울 촌놈 서로와 보낸 3박4일 동안 할아버지인 내가 한 일은 고작 개울에 가서 물고기와 놀고, 잠자리채를 들고 언덕을 누빈 것뿐이다. 산골 이웃들이 먹여 주고 함께 놀아주었다. ‘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싶어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서로는 다시 서울로 갔다. 서로는 오늘도 엄마 손을 잡고 산책도 하고 시장도 가고 어린이집에도 갈 것이다. 어디든 갈 것이다. 갈 수 있을 것이다. “엄마, 내 손을 꼭 잡고 따라와. 내가 앞이 잘 보이니까 괜찮아” 하면서 말이다. 서로는 엄마에게 방향을 알아내는 나침반이고,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멋진 노다. 서로와 함께 걸었던 산골 언덕 너머에 오랜만에 저녁놀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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