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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있든 없든 복잡계는 복잡계다

입력 2022.08.18 03:00

수정 2022.08.1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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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이해할 수 있든 없든 복잡계는 복잡계다

우리 사는 세상은 정말 복잡해 보인다. 사전에는 ‘복잡하다’의 풀이가 ‘일이나 감정 따위가 갈피를 잡기 어려울 만큼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로 적혀 있다. 서로 다른 두 측면이 ‘복잡함’의 의미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는 것은 대상의 속성인 한편,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것은 인식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복잡함의 의미를 대상과 인식의 속성으로 나눠 생각해보면 네 조합이 가능하다. 대상이 단순해서 이해도 단순한 경우, 대상은 단순한데 보여주는 현상은 갈피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경우, 대상은 여러 가지가 얽혀 있어 복잡한데 그래도 단순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경우, 그리고 대상도 인식도 모두 복잡한 경우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대상이 단순해 이해도 단순한 것이 있다. 한쪽 끝을 고정하고 막대를 가만히 놓으면 일정한 주기로 왕복한다. 운동방정식을 적는 것도, 이를 풀어 운동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막대 하나는 대상도 이해도 단순하지만, 막대가 둘이 되면 훌쩍 상황이 달라진다. 구멍을 하나씩 뚫고 나사못으로 둘을 가볍게 연결해 매단 것이 이중진자다. 대상으로서의 이중진자는 운동방정식을 쉽게 적을 수 있어서 여전히 단순하다. 하지만 방정식의 답을 수식으로 깔끔하게 적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래쪽 막대 끝의 궤적을 그려 보면 정말 복잡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중진자는 단순한 방정식으로부터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복잡한 현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준다. 또 처음 막대를 놓은 각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미래의 위치가 크게 달라지는 카오스 현상도 단순한 이중진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 크게 각광받은 카오스의 발견으로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아주 단순한 대상이라도 얼마든지 복잡한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카오스로 주목받은 복잡성은 대상의 복잡성이 아니었다. 단순한 대상이 보여주는 도무지 갈피 잡을 수 없는 현상의 복잡성이었다.

막대 하나의 진자 운동 방정식은 무척 단순하지만, 현실의 막대가 정말로 단순한 것은 아니다. 막대가 회전하니 높이에 따른 중력장의 변화도 고려해야 하고, 막대에 작용하는 공기의 저항력도 넣어 계산하는 것이 맞다. 높이에 따라 바람의 속도도 다를 수 있으니, 막대 진자의 정확한 물리학은 지구의 기상학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복잡한 문제가 되고 만다. 교과서의 간단한 수식을 정확히 따르는 막대는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운동방정식이 단순하다 해서 정말로 막대가 단순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단순해서 이해도 단순한 것, 단순하지만 이해는 복잡한 것이 있다 했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세상에 실제로도 단순한 것은 거의 없다.

대상이 복잡하다 해서 이해를 포기하는 것은 과학의 태도가 아니다. 막대가 짧다면 중력의 변화와 공기 저항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운동방정식을 정확히 따르는 막대는 세상에 없지만, 세상 속 대부분의 막대 진자는 단순한 방정식으로 어림해 높은 정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대상의 복잡함을 단순하게 어림해 바라보는,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시력이 좋아지는 시선이 과학이다.

과학의 복잡성은 대상의 복잡성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모든 입자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넣어 구성한 이론은 우주 전체에 정확히 대응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이론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런 이론 없이 우주 전체를 그냥 바라보며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다를 수 없다. 세상 모든 것을 단 하나도 생략하지 않고 담고 있는 지도가 무용지물인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과 같은 크기인 이 지도를 보느니, 그냥 세상 위를 걸으면 될 일이다. 복잡한 대상을 같은 정도로 복잡한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해가 아니고, 대상과 같은 정도로 복잡한 이론의 존재는 이론의 부재와 매한가지다.

20세기 카오스의 ‘복잡’은 단순한 시스템이 보여주는 현상의 복잡성의 의미였다면, 21세기 복잡계 과학의 ‘복잡’은 현상의 복잡성이 아닌 대상의 복잡성을 뜻한다. 이해할 수 있든 없든 복잡계는 복잡계다. 복잡계 과학자가 현실 복잡계를 단순한 어림으로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연구 분야가 갑자기 비복잡계 과학으로 바뀔 리는 없다. 복잡한 세상을 보는 단순한 시선이 과학이고, 복잡한데 복잡하지 않다고 우기지는 말자는 것이 복잡계 과학의 시선이다. 과학이 어렵다면 잊지 마시라. 세상은 과학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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