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정자 ‘정운호 게이트’ 수사기밀 유출 의혹
김현보 윤리감사관과 40회 이상 통화…특정인 조사 등 알려
사법농단 연루 판사 “수사 담당자도 유출한 정보” 무죄 주장
판결문 적시된 행위 사실일 땐, 위법성과 별개로 부적절 논란
윤석열 정부 첫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이원석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2016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일 때 ‘정운호 게이트’ 수사정보를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문제가 주요 검증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내정자의 수사정보 유출 문제는 2019년 서울중앙지법의 ‘사법농단 사건’ 공판에서 처음 불거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재직 중 정운호 게이트 사건 수사정보를 법원행정처로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기소된 신광렬 전 판사 등의 재판에서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신 전 판사가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에게 수사정보를 알려준 행위가 중심이었다. 그런데 피고인인 신 전 판사 등의 변호인들이 수사기록에서 ‘정운호 게이트’ 사건을 수사하던 이 내정자와 김현보 당시 행정처 윤리감사관(현 변호사)이 40회 이상 통화한 내용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재판 분위기가 뒤집혔다. 김 전 감사관은 ‘정운호 게이트’에 법관이 연루됐으니 수사 상황을 잘 살펴봐야 한다는 임 전 차장의 방침에 따라 이 내정자와 통화했다. 통화 내용은 문건으로 정리해 임 전 차장에게 보고됐는데, 문건엔 ‘오늘 저녁 영장 청구 예정’을 포함해 영장의 종류와 내용, 특정인 조사 상황 등이 담겨 있다.
김 전 감사관은 신 전 판사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자신이 이 내정자와 사법연수원 동기(27기)이고, 2009년 행정처에서 사법등기심의관을 할 때 이 내정자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에 근무해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김 전 감사관은 “처음엔 이 내정자가 먼저 연락했고, 이후엔 자신이 더 많이 연락했다”고 했다. 이 내정자가 김 전 감사관에게 전화를 걸어 “법관 비위 관련 사항이니 돌아가는 상황을 윤감실(윤리감사실)에서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본격 수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알려줬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친분과 이 내정자의 전화는 정운호 게이트에 법관이 연루돼 사건이 커질 것을 우려하던 행정처의 필요와 맞아떨어졌다. 행정처 문건에는 ‘수사 진행 경과 파악할 수 있는 인적 콘택트 포인트 필요’ ‘면밀한 수사 상황 점검 및 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응 전략 수립’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에 따라 이 내정자를 ‘콘택트 포인트’로 삼았느냐는 질문에 김 전 감사관은 “인위적으로 그런 생각은 안 했다”고 했다.
신 전 판사 등은 수사 담당자인 이 내정자가 유출한 정보가 어떻게 공무상 비밀누설죄에서 말하는 ‘비밀’에 해당하느냐고 재판에서 주장했다. 설령 신 전 판사 등이 행정처로 수사정보를 알려줬다고 해도 범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신 전 판사 등은 이 내정자를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신 전 판사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무죄로 판단한 핵심적인 근거가 바로 이 내정자의 수사정보 유출 문제였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스스로 행정처에 수사정보를 알려준 정황을 보면 신 전 판사가 행정처에 알려준 수사정보를 유출해서는 안 될 만한 비밀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내정자가 유출한 수사정보가 특수1부장으로서 직무상 취득한 것이고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있다면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다만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정보 유출로 국가 기능에 장애가 초래돼야 성립하는데, 이 내정자의 행위로 수사 기능에 장애가 생겼는지는 불분명하다.
판결문에 적시된 이 내정자의 행위가 사실이라면 위법성 여부와는 별개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수사가 종료된 뒤 정식으로 관계기관에 공직자의 비위사실을 통보한 것이 아니라 수사 중에 정보를 유출했기 때문이다.
사법농단 사건 수사를 지휘한 사람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였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검찰총장 임명 제청자인 한 장관이 이 내정자의 수사정보 유출 문제를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 검찰총장 후보 추천과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느냐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