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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광복절

입력 2022.08.19 03:00

77주년을 맞는 광복절 기념식. 행사는 엉성했다. 행사의 규모가 문제가 아니라, 진정성이 문제였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번째 맞는 행사였지만, 국민이 함께 공감할 만한 대목은 별로 없었다. 성공한 행사가 되려면 지켜보는 이들과 마음이 통해야 하는데 그저 따분한 행사가 되고 말았다. 행사 장소를 왜 용산 대통령실 앞마당으로 골랐는지 모르겠다. 설마 대통령의 편의 때문은 아니겠지만, 독립기념관, 서대문형무소 터 등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숱한 장소를 굳이 건너뛴 까닭을 모르겠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뜨악했던 건 행사 도중에 불쑥 튀어나온 이종찬씨의 ‘기념 말씀’이었다. 광복회장의 축사와 대통령의 경축사 중간이었다. 육사 16기, 전두환 신군부의 핵심으로 민정당에서 맹활약했고, 여러 부침 끝에 김대중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맡기도 했다. 사회자는 우당 이회영 기념관장이란 직함으로 소개했지만, 비슷한 직함을 가진 사람들은 많다.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도 많고, 기념관도 적지 않다. 그중에 굳이 이종찬씨를 고른 까닭은 대통령과의 특별한 사적 관계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대통령은 이씨의 아들과 55년 된 오랜 친구다. 서로 친한 친구라고 말하고 있고, 윤 대통령이 친구 아버지 이종찬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검찰총장을 그만둔 직후, 참석한 첫 번째 공개 행사도 바로 이회영 기념관 개관식이었던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국가의 공식 행사에 친구 아버지를 모셔서 말씀을 듣는 것은 그야말로 공사 구분이 안 되는 윤석열 대통령식 국정 운영 난맥상을 다시 한번 그러내는 것이다. 여태껏 이랬던 적은 없었다.

대통령의 경축사도 엉망이었다. 대통령이 입에 올린 자유와 인권은 편협하고 자의적으로 왜곡되었다. 독립운동이 자유, 그것도 자유민주주의라는 특정 이념을 위한 것이었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설립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대목에선 할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의 독립운동이 대개 민주공화정 수립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게 꼭 자유민주주의라는 특정한 체제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자유민주주의의 텃밭이랄 수 있는 미국에서의 독립운동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중요한 활동 무대는 소련과 중국 공산당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한반도 주변이었다. 당연하게도 독립운동가 중에는 중국 공산당원도 있었고, 소련의 보호를 받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념을 지녔든 독립운동 행적만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기리는 게 대한민국 보훈의 기본 원칙이다. 나중에 북한 정권에 가담한 사람만 예외로 할 뿐이다. 몰라서 그런 것인지, 일부러 왜곡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역사를 왜곡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북한을 향한 이른바 ‘담대한’ 구상도 그렇다. 도대체 뭐가 담대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진정성을 보이면, 단계에 맞게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북한의 핵개발이 남한의 경제적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모르지만, 북한이 이번 제안에 화답할 가능성은 없다. 이미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비핵화를 위한 숱한 대화와 논의가 쌓여 있는데도, 이명박 정권 때의 ‘비핵 개방 3000’과 별반 다르지 않은 주장을 펼치면서 스스로 담대하다고 우기는 까닭은 뭘까.

한·일관계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은 특히 이상했다.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언급하면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이 공동선언은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잇는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사죄를 바탕으로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확인했던 것처럼, 공동선언의 핵심은 일본 총리가 직접 문건을 통해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했다는 것이었다. “식민 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는 공동선언의 맨 앞에 적힌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윤 대통령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언급하면서, 선언의 핵심은 슬쩍 비켜가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해방 50년이 다 되어서야 조금씩 반성과 사죄를 말하던 일본이 아베 전 총리가 주도한 반동적 우경화 이후 나쁘게 변하고 있다. 그럴수록 한국 대통령의 메시지가 중요했지만, 그저 일본이 듣기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광복절 경축사를 읽는 대통령의 목소리는 힘찼지만, 내용은 엉뚱했고 함량미달이었다. 이렇게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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