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막지 못한 ‘수원 세 모녀’의 죽음, 복지시스템 재검토해야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세 모녀’가 살던 집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세 모녀는 건강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아온 것으로알려졌다. 권도현 기자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세 모녀’가 살던 집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세 모녀는 건강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아온 것으로알려졌다. 권도현 기자

경기 수원의 월셋집에서 빈곤과 병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세 모녀의 죽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난소암을 앓던 60대 여성 A씨, 난치병과 정신질환을 각각 앓던 40대 두 딸이 살던 집에선 “지병과 빚으로 생활이 어렵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2014년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지만, 시스템의 허점 사이로 또다시 한 가족이 추락했다.

이번에 드러난 문제는 주민등록 등재와 전산정보에 바탕을 둔 현 복지시스템의 맹점이다. 수원 세 모녀는 기초생활수급신청을 했다면 월 120여만원의 생계급여와 의료비 지원이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신청도 상담도 하지 않았다. 빚 독촉을 피하느라 주소지는 화성시에 두고, 실제로는 수원시에 거주하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처럼 채무문제나 가족갈등을 이유로 소재지가 확인되지 않는 ‘거주불명자’가 지난해 말 기준 24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숨은 위기가구가 더 있을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정부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소외계층을 발굴하기 위해 단전·단수·건강보험료 체납 등 34가지 위기정보를 지자체에 제공하는 사회보장 정보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주소지가 어긋나면 제 기능을 못한다. 게다가 현장에서 위기가구를 찾아나설 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수원 세 모녀를 지자체가 찾아나선 것은 이들이 건강보험료를 16개월치나 연체한 시점이었다. 정부는 위기정보를 39가지로 늘리겠다는 계획이지만, 위기정보 가짓수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비극의 재발을 막으려면 복지 전달체계를 재검토해야 한다. 거주불명이거나 주민등록이 말소된 위기가구를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찾아내도록 사회복지 인력을 충원하고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취약계층 지원 강화도 병행돼야 한다. 정부가 발굴한 취약계층 가운데 공공부조 안에 포함되는 비율이 20% 이하여서 신청조차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복지정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그런 주거지로 이전해서 사는 분들을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저는 복지에 관해 그동안 ‘정치 복지’보다는 ‘약자 복지’를 추구했다”며 “어려움을 한목소리로 낼 수 없는 약자들을 잘 찾아서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기의 시민을 보호할 막중한 책임을 다시 새긴 것은 당연하다. 다만 ‘약자 복지’를 강조하는 시혜적 관점은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복지는 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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