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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하되 두려운, 변화

입력 2022.08.25 03:00

수정 2022.08.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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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미래] 존중하되 두려운, 변화

언제나 그렇듯 잠잠할 날 없는 인터넷이다. ‘사흘’이라는 단어를 보고 “ ‘4흘’이라고 안 써 헛갈린다”며 성난 사람, “명징하게 직조한”이라는 표현을 보고 “잘난 체한다”며 성난 사람, ‘심심한 사과’라는 말에 “사과한다더니 뭐가 심심하냐”고 성난 사람의 이야기가 입길에 오른다.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 만화가

세상이 변한다. ‘사람들이 갈수록 무식하다’고 투덜대는 분도 있는 것 같지만, 내 생각은 그렇진 않다. 문맹률은 낮고 교육수준은 높다. 각종 지표는 사람들이 갈수록 유식하다는 증거다. 요즘 사람이 옛날보다 어휘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다.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이 나는 달갑지 않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쓴 <정치와 영어>라는 글이 있다. “익히 보아온 비유는 사용하지 말라”거나 “외래어나 전문 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쓰지 말라”거나 하는, 눈길 끄는 원칙이 나온다. 우리글 우리말에 비추어도 맞는 말씀 같다.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는 글귀는 “깊이 사과한다”로 풀어도 된다. “내가 미안하다”거나 “이 점은 내 잘못이다”라고 또렷이 밝혀 적으면 더 좋다.

한자말이냐 아니냐, 한자 교육을 하느냐 마느냐 이런 문제는 아니다. ‘심심(深甚)한 사과(謝過)’를 자신있게 한자로 쓸 사람도, ‘미안(未安)하다’는 말이 본디 한자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기연가미연가해서 나도 사전 찾아봤다). ‘심심한 사과’ ‘우려’ ‘유감’ ‘통석의 념’처럼 지나치게 품격 넘치는 말은 “우리가 잘못했다”는 말을 하기 싫을 때 쓰는 말일 수 있다. 이도저도 아닌 상황을 만들고 싶을 때 일부러 어정뜬 말을 쓴다. “정치적 언어는 거짓을 사실처럼 만들기 위해 고안된다”고 조지 오웰은 말했다. 자기도 남도 헛갈리게 하려고 글을 꼬아 쓴다는 거다.

변화는 변화다. “변화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면 변화에 지는 거다. 오래고 고운 말이 사라지는 일은 속상하다. 하지만 보기 나름이다. 변화의 방향에 좋은 점도 있다. 젠체하는 말은 옛날 옛적 제사장 계급의 유습이 아닐까. 어려운 말이 사라지는 현상은 새뮤얼 버틀러나 발터 베냐민이나 조지 오웰처럼 삐딱한 지식인들이 꿈꾸던 민주주의문화가 가까이 온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심심한 사과’라는 말을 모른다는 대목보다도(모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 ‘성난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을까? 자기가 모르는 말을 썼다고 왜 화를 내는 걸까? “세상에는 이런 어휘도 있다”고 설명해주면 왜 역정을 부리는 걸까?

여러 해 전 내가 그린 웹툰을 보던 독자님들이 분개했다. 내가 웹툰에 설명 페이지를 넣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식을 원하는 줄 아느냐”며 화를 냈다. 나는 후하게 말하면 ‘가교적 지식인’이고, 박하게 치면 ‘교양의 보따리장수’다. 독자님이 교양 지식이 필요 없다고 하시니 섭섭한 건 둘째 치고 갈수록 먹고살기 고달픈 처지다. 이것이 변화의 두려운 면이다, 나 같은 창작자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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