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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줄 모르는 얼굴

입력 2022.08.26 03:00

한 대학이 등 떠밀려 재조사에 착수한 논문 표절 사건을 그냥 덮어버렸다.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날 정도의 연구부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교수회가 전체 교수를 상대로 박사학위 논문 검증위원회 구성 찬반 투표까지 시행했지만, 이마저도 반대가 다수였다. 그러면 그렇지.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군. 학문의 자율성이 전혀 없는 대학 현실이니 그럴 수밖에. 다들 혀를 차는데, 보다 못한 표절 피해자가 시정과 사과를 요청하고 나선다. 표절 당사자와 대학 당국은 마치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듯 전혀 응답하지 않고 깔아뭉갠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 모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부끄러워야 마땅한데 어쩜 저렇게나 당당하지?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은 이러한 의아함을 풀어준다. 사람은 존중하는 상호작용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승인된 사회적 속성에 맞춰 연출해서 상대방에게 제출한다. 이 얼굴이 드러내는 이미지대로 대우해달라고 요청한다. 상대방도 자신의 얼굴을 제출함으로써 이러한 요청에 응답한다. 요청과 응답의 연쇄 속에서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존중받는다. 그런 점에서 얼굴은 상대방의 평가를 조작하기 위한 기만적인 체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상호작용의 질서에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공적 얼굴이다. 자신이 제출한 얼굴이 상대방으로부터 마땅한 인정을 받지 못하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부끄럽다 못해 평정을 잃은 사람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때문에 자신이 존중하는 상호작용의 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나려고 마음먹지 않는 한 모두 부끄러움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런 점에서 부끄러움은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감정이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상호작용의 질서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증거다. 손상된 얼굴을 수습해서 존중받는 얼굴로 되돌리기 위한 교정작업에 착수한다. 여기에서 사회가 출현한다. 이는 얼굴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현대세계 이전에는 얼굴이 없는 비인간이 많았다. 노예와 하인이 대표적인 예다. 주인의 얼굴을 꾸미는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얼굴이 없다. 자리에 함께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상호작용에 참여할 수 없다. 주인과 손님은 노예와 하인이 옆에 있는데도 마치 없는 것처럼 마음대로 행동한다. 비인간은 굴욕감과 모멸감에 휩싸이지만, 마냥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비인간이라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사회 밖에 나갈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다. 주인과 노예는 서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니 인간들 사이에 마땅히 주고받아야 할 의례가 완전히 사라진다.

현대세계라고 해서 비인간이 아예 사라진 것이 아니다. 고프만은 가사노동자, 유아, 노인, 흑인, 정신병자를 그 예로 들었다. 요즘 같으면 난민이나 이주노동자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들은 얼굴이 아예 없거나, 아직 갖지 못했거나, 잃어버린 비인간이다. 얼굴 없이 사회 세계 밖에 살아가도록 강제된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하는 현대세계는 누구나 얼굴을 가지고 상호작용의 당사자로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 얼굴을 가진 참여자라면 상호작용에 참여한 누군가의 얼굴이 손상되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상호작용의 질서를 존중하는 이상 참여자 모두 손상된 얼굴을 회복하기 위해 힘쓴다. 얼굴이 손상되었는데도 뻔뻔하다 못해 당당하게 나오면 상호작용의 질서는 붕괴한다. 표절 당사자와 대학이 얼굴이 심하게 망가졌는데도 전혀 교정작업을 하지 않는 것은 참여자를 비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비인간 취급받은 참여자도 부끄러움을 놓아버리고 사회 밖으로 나가버린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대한민국이 소멸하기도 전에 사회가 먼저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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