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첫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열고 기업 범죄에 대한 과도한 처벌을 완화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대규모유통업법 등에 있는 32개 형벌 조항을 거론했다. 윤 대통령은 “규제는 이념과 정치의 문제가 아닌, 현실의 문제”라며 “국민 생명과 안전, 질서 유지에 꼭 필요한 합리적 규제만 남기겠다”고 말했다. 기업을 불필요하게 옥죄는 규제는 폐지돼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폐지·축소 대상으로 언급한 규제가 과연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은 대형 유통업체가 납품업자를 종속시켜 다른 기업과 일절 거래를 못하게 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약자인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다. 하지만 정부는 앞으로 이런 경우 대기업에 시정명령을 먼저 내리고 이를 지키지 않을 때만 처벌하는 방향으로 법을 바꾸기로 했다. 대기업이 품질 검사 명목으로 중소기업에 갑질을 하고, 구매확인서를 제때 발급해주지 않으며, 대형 건설사가 하청업체에 공사대금 지급을 보증하지 않은 경우 등도 같은 방식으로 처벌 수위를 낮추기로 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불이익을 당해도 신고조차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규제마저 사라지면 대기업의 전횡은 더욱 심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윤 대통령은 “현실에 맞지 않는 법령 한 줄의 규제에 기업의 생사가 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대기업의 말 한마디에 생사가 갈리는 중소기업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오염물질 배출 기업의 형량을 낮추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환경범죄단속법상 오염물질을 배출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에 처한다. 그런데 정부는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만 기존 형량을 유지하고 중·경상 피해는 처벌 수위를 대폭 낮추기로 했다. 친환경 경영을 요구하는 국제적 흐름과도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기업인의 책임을 강조한 중대재해처벌법 규정 약화도 시도하고 있다. 윤 대통령까지 참석해 추진하는 규제혁신위의 첫 회의가 고작 비리 기업인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라니 유감스럽다. 이제야 겨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려는 판에 이를 되돌리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법 개정 과정에서 국회가 이런 점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