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원장 직무집행 정지’ 판단 주요 쟁점

완승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7일 서울남부지법에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제출한 가처분 신청 사건 심문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남부지법은 26일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직무집행을 본안 판결 확정 때까지 정지해야 한다며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사실상 인용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최고위 일부 사퇴에도 의사결정 가능…비대위 설치 요건 불충분
이준석, 대표 복귀 못해 회복 불가한 손해…여당 주장 전면 배척
법원은 26일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직무집행 정지 결정을 내리면서 “비대위 의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했다. 법원은 이준석 전 대표가 국민의힘과 주 위원장을 상대로 낸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국민의힘을 상대로 낸 신청은 각하, 주 위원장을 상대로 낸 신청은 인용했다. 형식상은 일부 각하, 일부 인용 결정이지만, 내용 면에서는 모든 쟁점에서 국민의힘 주장을 배척하고 이 전 대표의 주장을 100% 인용했다. 법원 관계자는 “국민의힘을 상대로 한 가처분 신청은 당사자 적격이 없어 각하한 것이고 실제 판단은 주 위원장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했는데, 그것이 인용된 것”이라며 “사실상 이 전 대표가 전부 승소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수석부장판사 황정수)가 심리한 이번 가처분 신청 사건의 핵심 쟁점은 국민의힘이 비대위를 출범할 만한 ‘비상상황’이었는지 여부였다. 국민의힘 당헌 96조 1항은 ‘당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안정적인 당 운영과 비상상황 해소를 위해 비대위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국민의힘이 굳이 비대위로 전환하지 않아도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상태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준석은 징계로 당원권이 6개월 정지돼 일시적으로 당대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사고’ 상태”라며 “원내대표 권성동이 당대표 직무대행을 수행하고 있어 ‘궐위’라고 볼 수 없어 비상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비대위 설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당대표가 성범죄와 증거인멸교사 등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아 당원권이 정지된 상황은 ‘궐위에 준하는 상황’으로 봐야 한다”는 국민의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비대위 출범이 필요한 비상상황으로 간주하려면 당대표 궐위나 최고위 기능 상실에 준하는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국민의힘의 당시 상황은 이런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대표 직무대행으로 최고위를 소집하고, 당헌 개정안을 공고하고, 비대위원장을 임명하는 등 당대표 직무 수행에 아무런 장애가 발생한 바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최고위원 과반수가 사퇴 의사를 표명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당이 비상상황에 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최고위원 일부가 사퇴하더라도 남은 위원들로 최고위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 2일 최고위에 4명만 참석해 안건을 의결한 점, 향후 정원 9명의 과반수를 채우지 못하더라도 전국위원회에서 추가로 1명만 선출하면 되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최고위 구성원 9명 중 5명이 사의를 표명해 사실상 궐위 상태로 최고위 기능이 상실되는 비상상황’이라고 결의한 국민의힘 의원총회 결과와 ‘당대표가 6개월간 사고로 당무에 참여할 수 없으며 최고위 정원의 과반이 사퇴를 표명하는 등 당헌이 규정한 비상상황에 해당한다’고 해석한 전국위 의결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비대위 전환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었다는 이 전 대표 주장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비대위 의결은 하자가 중대해 무효”라며 “이로 인해 이준석이 당대표 지위와 권한을 상실해 당원권 정지 기간이 만료돼도 복귀할 수 없게 됨으로써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고 있으므로 주호영의 비대위원장 직무집행을 정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정당 내부 의사결정이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당 자율성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상임전국위와 전국위 의결로 수십만 당원과 일반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전당대회에서 지명된 당대표와 최고위원의 지위와 권한을 상실시키는 것은 정당의 민주적 내부질서에 반한다”고 했다.
통상 본안 판결 확정 전까지만 효력이 인정되는 가처분 결정에선 재판부가 본안 사건의 주요 쟁점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재판부가 모든 본안 사건 쟁점에 대해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하며 일일이 판단을 내렸다. 법조계에서는 본안 재판에서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