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 재판’에 반하여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인성(人性):

1. 사람의 성품. 2. 각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 특성.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적혀있는 인성의 두 가지 뜻이다. 첫 번째 정의는 사람의 됨됨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인성 교육’ ‘인성이 좋다’ 등의 표현이 있다. 두 번째 정의는 개성을 뜻하는 것으로 ‘인성 검사’ ‘인성 개발’ 등의 표현에 사용한다. 전자가 좋고 나쁨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포함하는 규범적인 용어라면, 후자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을 가리키는 중립적인 용어이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두 가지 의미가 겹쳐서 다소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직장에 들어갈 때 실시하는 인성 검사는 ‘조직에 들어와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을 걸러내려는 목적이 강하다. 이는 해당 조직의 질서와 문화에 적응하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품성을 가진 사람인지를 보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계속하게 된 것은 ‘인성’ 문제 때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험한 서너 곳의 직장은 공통되게 인성을 강조했다. 20대의 첫 직장은 소규모 잡지사였다. 대표는 근로 시간과 상관없이 번역, 기사 작성, 취재, 냉장고 청소, 사장의 개인 심부름 등을 하기를 요구했는데, 이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은 ‘인성이 나쁜’ 사람으로 비난받곤 했다. 40대에 비교적 높은 직급에서 일했던 곳에서 마주한 상황도 비슷했다. 출근 첫날부터 상사는 ‘인성은 기본이다’라고 강조하며 자신의 비서처럼 일하기를 요구했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더 많은 불합리한 처우로 되돌아오곤 했다. 인성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나는 결국 몇 개월 만에 퇴사했다. 두 곳 모두에서 ‘인성이 좋다’는 평가는 상사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권위적인 문화와 연동됐다. 이런 상황에서 ‘인성’에 대한 강조는 잘못된 노동관계에 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무기로 사용됐다.

‘인성’ 논란은 단지 직장에만 국한해 작동하진 않는다. 인터넷은 만인이 만인을 대상으로 인성 평가를 하는 공간이다. 나쁜 일로든, 좋은 일로든 주목받는 인물은 어김없이 인터넷상에서 ‘인성 재판’을 받는다. 특히 연예인들은 인성 재판에 취약하다. 이들에 대한 인성 재판은 쉽게 사이버폭력으로 이어지고, 간혹 해당 연예인의 자살로 끝난다. 인터넷상의 인성 재판은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인성 좋은 연예인은 어떤 상황에서든 밝게 인사하고, 팬들의 요구에 친절하게 부응해야 한다. 히트를 치는 드라마는 매번 바뀌지만, 그로 인해 스타덤에 오른 배우에 대한 품평은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친절한, ‘인성 좋은’ 사람인지에 관한 것으로 동일하다. ‘미담 제조기’로 ‘인성 갑’으로 칭송받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이코 패스’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몇 달 전 일본 유명 작곡가의 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으로 촉발된 유희열에 대한 마녀재판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성 재판이 해당 사안에 대한 논의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이코 패스 같은 ‘인성’을 가진 사람이 저지른 것으로 치부되는 순간 해당 사건은 어떠한 논의도 할 가치가 없는 것이 된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유행하는 ‘MBTI’가 수용되는 방식은 한국 사회의 ‘인성’에 대한 강박을 보여준다. MBTI는 상이한 특성을 가진 개인들이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며 협업하는 것을 지원하는 도구이다. 서로에 대한 특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시너지를 확장하고자 함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MBTI는 인성 재판 도구로 사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에는 단순히 MBTI 유형으로 서로를 규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절대 상종하면 안 되는 MBTI’ ‘절대 뽑으면 안 되는 MBTI’ ‘사이코 패스 MBTI’ ‘동족 살인하는 MBTI’ 등으로 인성 나쁜 사람을 분류해 가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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