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법원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 직무정지’ 하루 만에 당헌·당규를 고쳐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하고 이준석 전 대표를 추가 징계하기로 했다. 국민의힘이 ‘비상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결정 취지에 반하는 행태다. 볼썽사나운 권력다툼으로 날을 지새워온 집권여당이 이제는 사법부 판단까지 대놓고 부인하겠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국민의힘은 지난 27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당헌·당규에 비대위 전환을 위한 절차적 조건을 규정한 뒤 새 비대위를 꾸리기로 했다. 법원이 ‘당대표의 일시 공백은 비상상황으로 볼 수 없음에도 비대위를 만든 게 문제’라고 하자, 이번에는 비상상황을 다시 정의해 ‘도로 비대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꼼수가 초래한 참사를 또 다른 꼼수로 넘어가보겠다는 것 아닌가. 국민의힘은 또 이 전 대표의 ‘양두구육’ 등 비판 발언을 이유로 그를 추가 징계하라고 당 윤리위원회에 촉구했다. 모든 무리수가 ‘이준석의 대표 복귀는 안 된다’는 목적을 갖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입만 열면 ‘법대로’를 외치는 대통령을 배출한 보수 정당이 법원 판단을 따르기는커녕 해당 판사의 성향을 문제 삼는 걸 보며 이 당이 법치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오죽하면 여당 내에서조차 “초가삼간 다 타는 줄 모르고 빈대만 잡으려 한다”(최재형 의원), “민심에 정면으로 대드는 한심한 짓”(유승민)이란 비판이 분출하겠는가.
국민의힘은 당분간 ‘주호영만 빠진 현 비대위’를 존속시키고 권성동 원내대표 주도로 당헌·당규 개정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한다. 권 원내대표는 ‘내부 총질’ 문자메시지 파문으로 이번 사태에 직접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다. 이런 인사가 의원들을 대표하는 직책을 유지하는 일 자체가 난센스다. 이번 혼란에 책임있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들은 당원과 시민에게 사과하고 모든 직을 내려놔야 마땅하다. 이 전 대표의 성비위 의혹 역시 철저히 수사돼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8일 국민의힘 사태와 관련해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고만 했다. 당내 상황과 거리를 두겠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내부 총질’ 문자를 보낸 당사자이다. 더욱이 지난 25일엔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해 “당정이 하나”라고 외치지 않았던가. 현직 대통령의 당무 개입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지만, 지금은 집권당이 유례없는 대혼돈에 빠진 시기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책임을 솔직하게 인정할 때만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