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나는 화가 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음을 밝힌다. 내 휴대폰은 하루 두 번 알람이 울린다. 기상과 호르몬 약 복용 시간. 지름 0.5㎜도 안 되는 이 작은 알약 하나가 갖는 위력은 무척 세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따른다. 지난주에 매년 필수로 받아야 하는 암 검사를 마치고, ‘올해는 별일 없나 보다’ 안도하는 나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증상의 양상, 강도, 기간 등 개인적 차이는 있지만, 완경 전후 호르몬 고갈로 인한 갱년기 증상들은 중년 여성들의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 그럼에도 그저 노화 과정 중 하나이니 개인적으로 ‘견뎌내야 하는 것’으로만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신문 기사를 통해 영국의 사례를 읽고 부러움과 동시에 화가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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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사회에서 갱년기 여성들의 노동과 건강권을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영국이 대표적이다. 영국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갱년기 여성들의 고통을 국가적 이슈로 인지하고, 다양한 조사와 대책을 수립했다. 조안나 부루이스 영국 오픈대학 교수는 “영국에서는 90만명 넘는 여성이 완경으로 조기에 직장을 떠난다. 완경기 여성들의 조기 퇴직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은 전 세계적으로 179조원 이상”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영국 평등청(Government Equalities Office)은 구체적 조사와 지원책을 마련했다. 경영자에게는 갱년기 여성 근로자에게 적절한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휴가를 주도록 권했다. 정부, 학계, 경영계, 노동계가 손을 잡고 76개 기업을 ‘갱년기 친화 기업’으로 인증했다. 영국노총(TUC)에서도 갱년기 여성을 위한 가이드를 발간해 노조와 고용주가 해야 할 일, 직장 단위 지원책, 갱년기 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었다.
📌[플랫]완경은 몸에 이끌렸던 삶에서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국내 현실은 어떨까? 국내 완경기 여성 80% 이상이 “증상이 괴롭고 치료가 필요하다”라고 호소하지만, 적극적인 치료와 관리를 받지 못한 채 건강기능식품 의존도는 매년 높아지고 있다(대한폐경학회, 2020). 나처럼 병원 호르몬 치료를 택한 사람들도 전문가마다 견해가 달라 정보를 접할수록 오히려 불안만 가중된다. 국내 연구는 주로 갱년기 인식, 치료실태, 심리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갱년기 여성들의 노동권, 사회적 대책 등 다각적 측면의 지원방안은 요원하다.
나는 감히 촉구한다. ‘꾸준한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 이제 그런 얘기는 그만 듣고 싶다. 개인적 노력 말고, 사회적 인정과 지원을 받고 싶다. 생애 주기별 특성을 반영한 실질적 정책과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때다. 갱년기를 생애전환기 필수 검진 항목으로 지정하고, 전문의로부터 충분한 상담과 교육이 뒷받침되기를 희망한다. 병원, 보건소, 직장, 가정 각 단위별 세부 지침을 마련하고, 누구나 소외받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10월8일이 세계보건기구와 국제폐경학회가 지정한 ‘세계 폐경의 날’인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갱년기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정부와 기업이 나서도록 하기 위해서 당사자들이 더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당장 나부터라도 갱년기에 관해 더 많이, 더 자주, 더 당당히 얘기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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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아 <50플러스세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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