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그 후, 손배폭탄이 남았다

‘파업=업무방해’인데 업무방해죄로 노동자에, 지지자까지 처벌

③손배폭탄 뒤엔 법원이 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주차장 철문이 닫혀있는 모습. 권도현 기자

서울 서초구 대법원 주차장 철문이 닫혀있는 모습. 권도현 기자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 외에 형법상 업무방해죄 처벌도 노동조합 쟁의행위를 위축시키는 법적 수단으로 지목된다. 지난 5월 헌법재판소는 10년의 심리 끝에 노조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이 합헌이라고 결정했지만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헌법상 노동3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쟁점은 집단적으로 노무 제공을 거부함으로써 사용자에게 대항하는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게 맞냐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1년 파업이 사용자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전격적이고, 중대한 손해가 발생한 때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업무방해죄는 위력을 이용해 업무를 방해한 때 성립하는데, ‘전격성’과 ‘중대한 손해’라는 요건을 갖추지 않으면 위법하지 않다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수자원공사 하청업체 노동자들 30~40명이 원청 건물 앞에서 ‘임금인상, 성실교섭’ 구호를 외치고 노동가를 부른 사건에 무죄가 확정되는 사례 등이 나왔다.

대법원의 2011년 판결은 폭력·파괴 등 과격한 행위 없이 단지 집단적으로 노무 제공을 거부하는 단순파업도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로 봤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했다. 노동조합법이 정한 절차와 요건을 다 따랐더라도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했고(전격성) 사측 손실이 클 경우(중대한 손해)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례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전원합의체에서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전격성과 침해의 중대성 개념이 모호해 자의적인 법 적용이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격성’ 기준에 따라 대법원은 2009년 철도노조 파업 참가자들의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쟁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정부정책을 이유로 노조가 파업할 것이라고 철도공사가 예상할 수 없었다”고 했다. 전격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3년 철도노조 파업 참가자들의 업무방해죄는 인정하지 않았다. 노조가 파업을 수차례 예고했고 철도공사가 파업 대책도 세웠다며 전격성이 없다고 봤다. 2010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하청노동자 정리해고에 반발해 휴일근무 집단 거부를 지시한 노조 간부들은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통상 휴일근무가 이뤄졌던 만큼 사용자가 파업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전격성을 인정했다. 이 사건으로 업무방해죄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지난 5월 헌재 결정문을 보면, 위헌의견을 낸 5명의 재판관은 대법원 판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재판관들은 “폭력 등 적극적인 행위를 수반하지 않고 본질적으로는 채무불이행에 불과한 단순파업에 대해 대법원이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될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며 “여전히 업무방해죄 조항으로 인해 근로자가 받고 있는 단체행동권에 대한 위축효과는 매우 심대하다”고 했다. 다만 위헌 선언을 할 수 있는 정족수(6명)에 미치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나왔다.

업무방해죄 처벌은 파업 당사자뿐 아니라 ‘파업 지지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2010년 최병승 당시 금속노조 미조직국장은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점거농성에 돌입하자 농성장에 들어가 조합원들을 독려했다가 ‘업무방해 방조’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나 노동조합이 노동3권을 행사할 때 제3자 조력을 폭넓게 받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고, 제3자도 표현의 자유가 있으므로 업무방해방조죄의 성립 범위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면서도 유죄가 맞다고 판결했다.

노조 쟁의행위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을 신중히 하거나 아예 배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봉수 전남대 법학과 교수는 논문에서 “폭력이나 파괴행위로 이어질 경우 별도의 처벌이 가능함에도 쟁의행위자체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하거나, 노조법상 쟁의행위와 관련해 다양한 벌칙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차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성립을 검토하는 태도는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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