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통령 특별사면권’이 꼭 존재해야 할까

김지환 기자

시민 정서 무관 ‘그들만의 리그’서 거래 대상으로 전락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8월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재벌 총수 사면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8월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재벌 총수 사면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이번 사면심사위원회는 2018년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라는 국가적 중대사를 앞두고 국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이건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대한 특별사면 상신의 적정성 여부를 심사해주십사 하는 취지에서 열리게 됐다.”(이귀남 법무부 장관)

“국제 경쟁이라는 축구장에 나가서 뛰는 우리나라 몇 개 대기업들은 우리가 좀 미워도 속상해도 세계무대에 나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다리 묶은 것을 풀어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삼성이라는 주전멤버 발에 뭘 채워놓고 뛰라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유창종 사면심사위원)

“법의 형평성도 있고, 사회정의 문제도 있고, 더군다나 얼마 안 됐는데 전례가 있다 한들 일반 정서로 쉽게 용납이 안 된다. 좀 아쉽고 개운하지는 않지만 찬성하겠다.”(권영건 사면심사위원)

“이건희 개인이 아니고 IOC 위원을 사면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국민수 대검 기획조정부장)

“재벌 중 정몽구 회장은 사회봉사명령이 붙어 있어 집행했으나, 이건희 회장은 그것도 안 붙었더라. 법원에서 많이 봐준 것 같은데, 법무부에서 또 봐주는 것으로 생각이 들지만 찬성하겠다.”(주철현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2009년 12월 24일 법무부 장관 회의실에서 열린 사면심사위원회 회의록을 요약·정리한 내용이다. 심사 안건은 형이 확정된 지 4개월밖에 안 된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이었다. 9명의 사면심사위원 중 오영근 위원만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했고, 나머지 위원들은 찬성 의견을 밝혔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는 닷새 뒤인 12월 29일 이 회장에 대한 ‘1인 특사’를 단행했다. 단독 사면은 1990년 KAL기 폭파 혐의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은 김현희씨가 특별사면된 이후 19년 만이었다.

■오·남용되는 특별사면

이건희 회장에 대한 ‘원포인트 사면’은 범죄행위라는 점이 9년 뒤인 2018년 뒤늦게 밝혀졌다. 그해 10월 이건희 회장 사면을 기대하면서 이명박씨에게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을 지원했다는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의 진술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이 전 부회장은 자수서에서 “삼성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소송비용을 대신 지급하면 여러가지로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기대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건희 회장 사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020년 삼성이 이명박씨에게 소송비 대납 형식으로 뇌물을 줬다는 사실을 확정했다.

삼성과 이명박씨의 사면 거래는 대통령 특별사면권의 오·남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문제는 특별사면권 오·남용이 반복되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여전히 없다는 점이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취임 뒤 처음으로 단행한 광복절 특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를 이어 특별사면권의 ‘혜택’을 본 셈이다. 이 부회장 복권 사유는 ‘경제 살리기’였다. 재벌의 투자·고용 등을 기대하는 정권이 재벌 총수에게 면죄부를 줄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활용하는 명분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치인, 공직자는 이번 광복절 특사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국정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적 이익을 위해 특별사면권을 악용한 이명박씨 사면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이명박씨 사면 필요성을 언급해왔기 때문이다. 야권 일각에선 이명박씨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동시에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일반 시민의 정서와 무관하게 ‘그들만의 리그’에서 거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대통령 특별사면권이 과연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헌법 제79조 제1항은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20년 결정문에서 사면제도의 연원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면제도는 역사적으로 절대군주인 국왕의 은사권(恩赦權)에서 유래했으며, 대부분의 근대국가에서도 유지돼왔고,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미국을 효시로 대통령에게 사면권이 부여돼 있다. 사면권은 전통적으로 국가원수에게 부여된 고유한 은사권이며, 국가원수가 이를 시혜적으로 행사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법 이념과 다른 이념과의 갈등을 조정하고, 법의 이념인 정의와 합목적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제도로도 파악되고 있다.”

사면은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뉜다. 일반사면은 범죄의 종류를 지정해 이 종류에 해당하는 모든 범죄인의 형 선고 효과를 소멸시키거나 형의 선고를 받지 않은 자에 대해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일반사면은 특별사면과 달리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 특별사면은 형이 확정된 특정인에 대해 그 형의 집행을 면제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반대 시민발언대 행사에 참가한 시민이 사면 반대 구호가 적힌 촛불을 들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반대 시민발언대 행사에 참가한 시민이 사면 반대 구호가 적힌 촛불을 들고 있다. / 권도현 기자

■통제 장치 없는 사면권

법무부는 지난 8월 25일 경향신문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현재 확인 가능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사면(복권)은 1948년 사면법 제정 이후 1995년까지 총 10회 시행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1995년 이후 지금까지 일반사면은 한 번도 실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특별사면(특별감형·특별복권 포함)은 100차례 넘게 이뤄졌다.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일반사면보다 외부 통제 없이 행정부 내부 절차로 진행할 수 있는 특별사면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행 법령은 특별사면권 행사의 절차적 측면만 규정하고 있을 뿐 대상, 기준, 한계 등 실체적 요건과 제한에 관한 아무런 규정이 없다. 대통령이 일정한 절차만 거치면 어떤 사면이든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특별사면권에 대한 유일한 제어장치는 2007년 사면법 개정에 따라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설치된 사면심사위원회다. 사면심사위는 위원장 1명(법무부 장관)을 포함한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법무부 장관은 공무원이 아닌 위원을 4명 이상 위촉해야 한다. 문제는 사면심사위의 심사결과가 대통령을 구속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 견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면심사위 회의록도 5년이 지나야 공개된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2015년부터 사면심사위 회의록은 어떤 위원들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구체적인 속기 내용이 담겨 있지 않고, 주요 발언 내용을 요약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외부위원 인적 구성도 주로 변호사, 로스쿨 교수 등 법률 전문가 위주다. 2012년 4월부터 2년간 사면심사위원을 지낸 김혜순 계명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사면을 판단할 때 중요한 건 법이 아니라 사회·경제·정치적 고려다. 그렇다면 법률 전문가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는 위원들이 심사위에 대거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사면권 남용을 막기 위해 특별사면권 행사의 제한과 한계를 명확히 정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5년 발표한 ‘특별사면권의 남용 문제와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살인 등 중범죄, 탄핵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정해 사면권 행사 대상에 제한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부적절한 특별사면이 단행될 때마다 사면권 오·남용 통제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사면법의 근본적 손질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법무법인 이공의 김선휴 변호사는 “정부·여당은 집권기에 특별사면권을 거래 수단이나 무기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야당은 자신들이 정치인으로서 사면의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지 사면법의 근본적 개정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그간 다양한 특별사면권 통제 장치를 제안해왔다. 대통령은 특별사면 단행 시 대법원의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도록 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이석민 전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이 2019년 발표한 ‘사면권의 한계에 대한 헌법적 검토’를 보면, 프랑스나 스웨덴 등의 입법례는 사법부 의견을 구하도록 하고 있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주 대법원 권고를 사면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독일은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법원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고 있다.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특별사면을 철회시키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다. 일정기간 이상의 형 집행이 경과되지 않은 사람, 사면을 이미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 헌정질서파괴·부패·테러 등 특정 범죄를 저지른 사람 등은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있다.

■특별사면권 삭제 주장도

우여곡절 끝에 특별사면권을 제한하는 입법이 이뤄진다 해도 사면권 오·남용을 근본적으로 막기는 어렵기 때문에 사면법에서 특별사면을 아예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7년 발표한 논문 ‘정치적 특별사면과 사법정의’에서 “사면법에서 특별감형, 특별복권만을 남겨둔 채 특별사면을 삭제함으로써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원천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회통합을 꾀하거나 사법절차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교정하는 도구가 오·남용 가능성과 부작용이 큰 특별사면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이세주 가톨릭대 법학과 교수도 2016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한 비판적 고찰’에서 “무제한적인 권한 남용 우려가 크고, 헌법의 주요 기본원리를 침해하는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은 폐지하는 게 옳다”고 밝혔다.

영화 <밀양>에서 신애(전도연 분)는 아들 유괴범을 용서해주기로 마음먹고 교도소를 찾는다. 범인은 평화로운 얼굴로 “주님의 용서와 사랑 속에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정작 피해자는 용서한 적이 없는데 가해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스스로를 용서한 것이다. 특별사면권 행사가 시민들은 용서한 적이 없는 정치인, 재벌 총수 등을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용서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이제 던져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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