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현의 노동법 새겨보기

연차휴가는 소중하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출근하는 직장인들 / 김영민 기자

출근하는 직장인들 / 김영민 기자

얼마 전, 연차휴가 사유에 ‘생일파티’라고 쓴 어느 직원의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화제였습니다. 회사에 제출하는 연차사유에 ‘생일파티’라고 쓴 경우에 대해 “회사에 보고하는 자료인데 요즘 세대들 이해가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연차사유는 원래 적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그런 걸 따지는 것이 ‘꼰대’”라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연차사유가 뭔가?

1990년대생의 경우 연차는 “나의 자유이고, 자유의 사유 또한 알릴 필요가 없다”(<90년대생이 온다> 중에서)로 요약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현실에서는 “부장님, 저… 연차 좀 내겠습니다”라고 어렵게 내밀며, 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연차사유 칸을 착실히 기재하는 직원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회사가 연차사유를 기재하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법적인 이유는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노동법은 “사용자는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60조 제1항)라고 규정하고 있고, 휴가를 실시한다면 연차사유를 제출해야 한다거나, 제출을 강제할 수 없다고 정하지는 않습니다. “휴가를 청구하는 근로자에게 그 사유의 기재를 요구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휴가 사유 기재 금지’ 개정법률안이 발의된 적(2016년)도 있었으나, 실제로 입법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회사 내규(취업규칙)에서 연차사유를 기재하도록 규정한 경우에는 일단 내규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 있어야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 사용자는 연차 유급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야 하고, 그 기간에 대해는 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근로자의 ‘시기지정권’). 다만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휴가의 ‘시기’와 관련해 사용자가 근로자의 휴가일 지정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사용자의 ‘시기변경권’).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은 어떤 경우일까요. 회사에 굉장한 타격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법원은 근로자가 지정한 시기에 휴가를 준다면 그 사업장의 업무 능률이나 성과가 평상시보다 현저하게 저하돼 상당한 영업상의 불이익을 가져올 것이 염려되거나 그러한 개연성이 엿보이는 사정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고 봅니다. 이를 판단할 때는 근로자가 담당하는 업무의 성질, 남은 근로자들의 업무량, 사용자의 대체 근로자 확보 여부, 다른 근로자들의 연차휴가 신청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이는 건별(case by case)로 판단하되 회사에 그 직원의 연차로 인한 ‘상당한 불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법원은 근로자의 연차휴가 시기지정권을 사용자의 시기변경권보다 적극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법원은 “근로자의 연차휴가는 통상 예견되는 것이고 평상시에도 늘 행해지는 것이므로 회사로서는 통상적인 근로자의 결원을 예상해 그 범위 내에서 대체 근로자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라고 합니다(서울행정법원 2015구합73392). 외근직 가전제품 수리기사인 근로자가 징검다리 연휴 중 2일의 연차휴가 신청을 반려했음에도 해당일자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4일의 정직처분을 한 회사의 결정에 대해 법원은 근로 인력이 감소해 남은 근로자들의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많아진다는 ‘일반적 가능성’만으로 시기변경권을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서울고법 2018누57171). 그리고 이러한 막대한 지장이 있다는 점은 근로자가 아닌 사용자가 입증해야 합니다.

예외적으로 대다수 근로자가 특정일자에 한꺼번에 연차휴가를 사용하거나, 시즌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등과 같은 객관적인 통계가 없는 이상 앞으로도 사용자의 연차휴가 시기변경권은 쉽게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일례로 버스회사의 운전기사가 ‘15일 연속’으로 휴가를 사용한 경우는 막대한 지장이 있다고 인정됐습니다(대법원 2000다4005).

결론적으로 연차휴가 사유를 어떻게 기재하는지 여부, 연차사유를 반려할지 여부는 시기변경권의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법원도 근로자가 최초 연차 신청 이유(이사준비)와 다르게 집회에 참석했고, 회사가 해당 연차유급휴가를 무단결근으로 처리한 사안에서 “회사가 시기변경권을 행사할 수 없고, 그에 따른 무단결근 처리는 위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연차 썼는데 업무지시하는 경우

눈치 보면서 연차를 썼는데 출근 업무지시가 오는 경우, 또는 반차를 썼는데 업무가 부여된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요. 마찬가지로 특정 근로자가 연차 사용을 한다고 하여 특별히 업무 능률이나 성과가 평상시보다 현저하게 저하된다거나 상당한 영업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연차는 통상 예견되는 것이고, 평상시에도 늘 있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이 정당하지 않고, 근로자의 시기지정권이 정당하게 인정되므로 이 경우도 근로자가 원하는 때 휴가를 못 쓰게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회사가 적법한 시기변경권을 행사하지 않은 채 근로자의 연차휴가를 방해한 경우에 해당하면 근로기준법 위반행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이유로 처벌받은 사례도 있습니다(대법원 99도317). 동시에 해당 상사의 행위는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회사의 입장도 있기 때문에 형사적인 문제가 되기까진 그 정도가 ‘상당히 심각’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차를 내고 퇴근시간까지 일하다 퇴근한 경우에는 해당 반차가 소멸되지 않습니다.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연차휴가 계획서를 제출했으나 실제 출근해 일했고, 회사도 별다른 이의가 없었던 사건에서 회사가 근로자에게 연차수당을 지급해야 한다(연차휴가가 취소되는 효과)는 사례도 있습니다(대법원 2019다279283).

회사 입장에서는 다소 불합리하고 현실과 동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연차휴가가 회사가 베푸는 온정과 시혜가 아니고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로서 소중하다고 본 판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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