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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등하교, 일상생활도 전쟁 같아요”···가습기살균제 피해 어린이·청소년, 공부는 물론 일상생활도 어렵다

입력 2022.08.30 16:46

수정 2022.08.3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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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참사 11주기를 하루 앞둔 30일 서울 마포 노을공원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준헌 기자

가습기살균제참사 11주기를 하루 앞둔 30일 서울 마포 노을공원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준헌 기자

1784명의 사망자가 나온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정부 발표를 통해 한국 사회에 처음 알려진 날은 2011년 8월31일이다. 그 뒤 11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참사 피해자의 30% 가까이를 차지하는 영·유아가 어린이·청소년으로 성장했지만 이들이 일상에서 겪고 있는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11주기 사망 어린이 추모 나무심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11주기 사망 어린이 추모 나무심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 연합뉴스.

약한 호흡기와 체력탓, 일상생활도 어려워

“학교에 가고, 집에 오는 일상생활을 매일 전쟁 치르는 것처럼 보내고 있어요. 다른 아이들처럼 친구들이랑 뛰놀고,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건 꿈 같은 얘기에요.”

가습기살균제 피해 청소년 둘을 자녀로 둔 A씨는 30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구에 거주하는 A씨 자녀 가운데 현재 재수 중인 첫째 B군(20)은 어렸을 때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이후 간질성폐렴과 천식, 심장비대증 등을 앓고 있다. 고1인 둘째 C양(17)도 천식과 만성부비동염, 간질 등 겪고 있는 질병만 대여섯 가지에 달한다. 어린 시절 시작된 질병은 나아지지 않고 성장하면서 새로운 질병이 추가됐다. B군과 C양 모두 약한 호흡기와 체력으로 또래 친구들처럼 평범한 학교 생활을 하기 어웠다.

가습기살균제참사 11주기를 하루 앞둔 30일 서울 마포 노을공원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준헌 기자

가습기살균제참사 11주기를 하루 앞둔 30일 서울 마포 노을공원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준헌 기자

A씨는 “학교 끝나고 와서 다른 아이들처럼 저녁 먹고, 공부하는 것조차 어렵다”며 “집에 오면 지쳐서 두세시간씩 잠을 자면서 휴식을 해야 이후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2009~2011년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피해를 겪고 있는 어머니 D씨와 자녀 E군(14), F양(13)도 각종 질환과 함께 체력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 화성에 거주하는 D씨는 “체력이 부족하다보니 같은 연령대 아이들보다 활동량도 현저히 적고, 하교 후에 낮잠을 자지 않으면 맥을 못 춘다”며 “중학생인데도 영유아처럼 낮잠을 자야만 저녁 활동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체력이 떨어지다보니 학습량도 점점 부족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수시로 아프고 다치는 것도 큰 걱정거리다. A씨는 “얼마 전에는 둘째의 학교에서 아이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까 집으로 데려가라고 연락했다”며 “학교에서도 아픈 아이가 감당이 안 되다보니 아이들 아빠가 일하다 말고 데리러 가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 상태가 수시로 안 좋아지니까 온 가족이 마음을 졸이면서 살고 있다”며 “아이들이 지금도 기존 질병뿐 아니라 새롭게 아픈 데가 나타나면 어디가 안 좋은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검사를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D씨는 “아이들이 잘 넘어지고, 다치다보니 각종 응급처리를 다 할줄 알게 됐다”며 “내가 최근 넘어져서 인대가 파열됐는데 집에 상비해 놓은 아이 깁스로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던 기막힌 상황도 있었다”고 말했다.

피해 어린이·청소년 학업성취도 저하, 학술적으로도 증명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입은 어린이·청소년들이 10년 넘도록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들을 보조·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전무한 실정이다. 현재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인정된 질환에 대해서는 의료비를 지급하고 있지만 일상의 어려움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지난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11주기 사망 어린이 추모 나무심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11주기 사망 어린이 추모 나무심기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나무를 심고 있다. 연합뉴스.

한양여대 연구진이 지난해 8월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발표한 ‘가습기살균제 사용에 따른 아동의 학업성취도 영향’ 논문을 보면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겪은 어린이·청소년은 학업 성취도가 다른 어린이·청소년에 비해 유의미하게 낮다. 특히 언어 및 수리능력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학업 성취도 저하에서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은 폐렴, 천식 등의 질환이다. 호흡기가 성치 못하고, 체력도 안 좋은 경우가 많다보니 다른 어린이·청소년처럼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다. 동물실험에서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뇌에서도 독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난 만큼 피해 어린이·청소년들의 뇌에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사회생활·군대에서도 지장 우려

피해 어린이·청소년 들이 앞으로 대학을 가고, 사회에 나가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취업 활동을 할 때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취직 이후에도 폐렴, 천식 등으로 인한 집중력·체력 부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병역 의무가 있는 남학생들은 군에서 호흡기 질환과 체력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겪은 청소년들 가운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경우가 많다보니 이들 중 다수는 몇 년 안에 군대에 가야한다. 면제 판정을 받을 수도 있지만 피해 정도가 비교적 가벼우면 입대가 불가피하다. 현재 고3인 박동현군(19)은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지기도 전인 2006년 폐의 기흉 등 증세로 목숨을 잃을뻔 했다가 회복됐다. 박군의 아버지 박기용씨는 “병원에서는 동현이의 현재 폐기능이 군대에 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회복됐다고 한다”며 “아이가 회복된 것은 다행이지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11주기 사망 어린이 추모 나무심기 행사에서 피해자 유족이 나무를 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11주기 사망 어린이 추모 나무심기 행사에서 피해자 유족이 나무를 심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정부가 피해자로 인정한 4350명 중 10~19세 비율은 전체의 29%에 달한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사회경제적인 측면의 피해가 복합적으로 발생되고 있다”며 “화학물질 노출이 단순히 육체적 질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지속적으로 사회생활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연구 결과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및 보상과 관련해 그 관점을 건강영향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보다 다양한 인구사회학적 영향 분야로 넓혀가는 데 있어 중요한 과학적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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