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정월과 2월 초하루에는 남성만 입장이 가능하다며 여성의 출입을 제한한 대한불교천태종의 관행은 성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천태종 총무원장에게 성별을 이유로 사찰 입장을 제한하는 관행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고 29일 밝혔다. 인권위는 여성을 부정(不淨)한 존재로 보아 입장을 제한하는 것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해 남녀평등 이념을 실현하려는 헌법적 가치에 어긋나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진정인 A씨는 관광 목적으로 사찰을 방문했으나 사찰 관계자는 음력 2월 초하루는 남성만 입장이 가능해 여성인 A씨는 정오 이후부터 입장할 수 있다며 출입을 제한했다. 이에 A씨는 성차별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A씨가 방문한 사찰은 총 12개의 문화재를 보유한 유적지이다. 연중 신도·비신도 모두 24시간 출입이 가능하지만 연중 2일(음력 정월과 2월 초하루) 자정부터 정오까지는 여성의 사찰 출입을 제한한다. 이런 제한이 적용되는 곳은 국내외 말사 150곳으로 파악됐다.
총무원 측은 70여년 전 종단을 중창하고 사찰을 창건한 제1대 종정 종파의 제일 높은 어른의 유지에 따른 제한 조치라고 인권위에 소명했다.
그러면서 창건 당시에는 가부장적 관습이 많이 남아 있었고, 새해의 시작인 정월 및 2월 초하루는 정(淨)한 날로 여겨 남성들만 기도에 정진했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경상도 지역에서는 초하루에 여성이 아침 일찍 돌아다니면 혼나는 전통이 남아 있다고 부연했다.
“각각의 종교마다 지향하는 바와 신앙의 내용·형식 등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 같은 관행은 종교의 자유라는 주장도 펼쳤다.
그러나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종교 내의 지위나 신도 여부를 불문하고 여성의 사찰 입장을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을 이유로 재화의 공급이나 이용과 관련해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이라며 “인권위법 제2조3호의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천태종이 ‘제1대 종정의 뜻이기 때문에 전통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논리 이외에는 제한 행위에 대한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천태종의 종헌·종법 등 성문화된 규범에 여성의 출입을 제한하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인권위는 특정일에 여성의 사찰 입장을 제한하는 행위는 ‘종교적 교리’라기보다 제1대 종정의 유지, 즉 ‘종파적 전통’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종파적 전통에 근거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결론내렸다.
총무원 측은 정월과 2월 초하루 이틀 동안 남녀 모두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을 개선 방안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70년간 여성의 평등권을 침해한 행위를 지속한 데 대한 피해 회복 조치로 볼 수 없으며, 남성의 출입까지 금지하는 것은 차별 해소를 위한 개선 조치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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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얀 기자 white@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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