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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정말 헷갈리지만 분명한 건

입력 2022.09.01 03:00

수정 2022.09.0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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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리그오브레전드’에 빠져 소식이 뜸했던 친구가 어느 날 밥을 사겠다며 자기집 근처 PC방으로 나를 불렀다. 20년 만에 PC방이란 곳을 가게 된 나는 호텔 카지노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와 최신 장비들을 보면서 새삼 세계적인 프로게이머를 배출한 조국 토양의 위대함을 느끼고는 두리번거리다 구석에서 혼자 전쟁을 하고 있는 친구를 찾았다.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자리에 앉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울상을 지으니 친구가 내 화면에 15페이지짜리 전자 메뉴판 창 하나를 띄워줬다. 나는 마우스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미쳤다. 말도 안 된다’ 하고 중얼거렸고 11페이지 맨 위에 있는 ‘정통 이태리 까르보나라’의 주문 버튼을 눌렀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아르바이트 직원이 베이컨 조각과 노른자가 올라간 까르보나라 한 접시와 피클을 내 코앞에 서빙해주었다. 나는 입을 틀어막으며 “PC방이 아니라 레스토랑 아니야?” 하고 연신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친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너는 몇십년간 교도소에 갇혀 있다 왔냐? 게임방에서 음식 먹는 게 뭐 그렇게 놀랄 일이라고.”

유튜브의 ‘도민이’가 올리는 브이로그는 그날 내 코앞에 어떻게 까르보나라 한 상이 차려졌는지를 자세히 알려주는 채널이다. 학교를 휴학하고 PC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그는 자신의 근무 일과를 편집해 영상으로 남긴다. 도민이가 올리는 영상은 대부분 음식을 조리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그 가짓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짜장라면 위에 치즈와 계란 프라이를 얹은 뒤 닭꼬치를 튀겨 소스들을 먹음직스럽게 뿌린다. ‘PC방에서 별걸 다 만드네’ 하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바가지로 수십명을 거뜬히 먹일 양의 쌀을 퍼서 전기밥솥에 안치는 장면이 나와 마시던 물을 다 뿜었다. 그사이 도민이는 냉동 메밀을 삶아 고추냉이와 김가루 깨를 듬뿍 올려 메밀국수를 완성하고, 달군 프라이팬에 냉동 삼겹살을 구워 야채와 양념장을 넣어 삼겹살덮밥을 만들고 구운 소시지 위에 치즈, 케첩, 양파 콘플레이크가 올라간 칠리 핫도그를 만들어 배달한다. 그리고 사이사이 인절미 미숫가루, 조리퐁 초콜릿 라테 같은 이색적인 카페 음료도 제조해낸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분식, 카페 메뉴까지… 10분 정도의 영상 안에 한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할 다양한 메뉴들이 ‘이건 예상 못했지?’ 하며 허를 찌르듯 연쇄적으로 등장한다.

‘내가 식당에 취직한 건지 PC방에 취직한 건지 모르겠다’, ‘앞에 카페도 있는데 왜 여기에서 이런 메뉴를…’. PC방에 가면 기껏해야 컵라면 정도나 먹을 수 있다고 알고 있던 나는 이런 근무 형태가 당연한 것인지 의문을 가지다 도민이가 영상마다 남긴 코멘트를 보며 ‘당사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하며 안심했다. CCTV가 24시간 돌아가는 좁은 공간에 머물며 조리, 청소, 서빙을 혼자 해내는 도민이의 브이로그는 쓰라린 유머와 자조적인 코멘트가 가득하다. 그래서 채널의 댓글창엔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아르바이트 근로자들의 위로와 격려가 끊임없이 오고 간다.

‘남의 돈 벌기는 원래 어려운 거예요.’ 댓글창의 스크롤을 내리다 귀가 닳도록 익숙한 문장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폐기 시간을 착각해 냉동식품을 먹었다가 횡령죄로 고소당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의 뉴스, 여러 가지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겹쳐서 하며 부모님을 부양했던 어느 브이로거의 부고 소식. 영상으로부터 쭉 스크롤을 내리면 이런 관련 동영상이 있는데 ‘남의 돈 벌기는 어렵다’는 한마디의 그늘이 너무 커서 잘 보이지 않는다. 눈물을 감추며 애써 웃어 보이는 이들의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지만 과연 ‘원래’ 어려운 것은 누가 정한 개념인지 끝까지 추궁하고 싶은 마음이 울컥 목구멍으로 치민다.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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