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대안은 없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계기, 민주당 “입법 우선” 밝혀
운동본부, 사용자 정의 변경 등 노조법 2·3조 동시 개정 요구
억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노동조합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법 개정 논의는 20년 전 시작됐지만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다. 기업의 ‘재산권 보호’ 논리에 번번이 막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을 계기로 국회 과반 의석을 점한 더불어민주당이 법 개정에 팔을 걷어붙였고, 시민사회도 총력전에 나섰다.
민주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입법을 우선시하겠다며 밝힌 22대 중점 법안에는 노조에 대한 손배 소송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이 포함됐다. 민주당 대우조선해양 대응 태스크포스(TF) 단장인 우원식 의원은 지난달 27일 “노란봉투법 제정안을 적극 추진해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극단적인 상황을 꼭 막겠다”고 했다. 국회 바깥에선 노동·법률·시민·종교단체 등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원청 책임·손해배상 금지 노조법 개정 운동본부(가칭)’가 오는 14일 발족하고 법 개정 캠페인을 시작한다.
운동본부는 ‘노동조합법 2조와 3조 함께 개정’을 요구한다. 노조법 2조는 근로자·사용자 정의 규정이다. 노동계는 이 조항의 정의가 협소해 하청·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등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노조법 3조는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규정이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곧 대표발의할 개정안 초안을 보면, 2조에서 근로자의 정의를 ‘다른 사람의 업무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 수령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으로 넓혔다. 사용자의 정의는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이나 수행업무에 대해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로 변경했다. 3조에서는 ‘이 법에 의한 쟁의행위’ 요건을 삭제했다. 원칙적으로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위한 근로자 또는 노조 행위로 손해를 입은 경우 사용자가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했다.
일각에서는 ‘노조가 폭력을 행사할 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정안에 의하더라도 노조의 폭력이나 파괴행위로 인해 직접적으로 발생한 손해는 배상 책임의 대상이 된다. 다만 이 행위가 노조에 의해 계획된 경우에는 노조 이외에 노조 임원이나 일반 조합원에게는 손배 청구를 할 수 없도록 했다. 노조의 배상액 상한은 조합원 수, 조합비, 노조 재정규모를 고려하도록 했다. 손배 때문에 노조의 존립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이다.
이전에는 2조 개정 또는 3조 개정이 각각 논의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2조와 3조를 함께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우조선해양과 하이트진로처럼 원청업체가 하청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대상으로 손배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3조만 개정할 경우 원청노동자의 쟁의행위는 보호받지만 원청이 하청노동자를 상대로 제기하는 손배청구는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1일 “현재 손배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면,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법상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빌미로 삼아 기업이 손배로 압박을 한다”며 “원청에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게 해야 3조 개정의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라고 했다. 송영섭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손배 가압류는 노동자가 최소 생계 유지 외엔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고, 노조 탈퇴를 조건으로 압류를 풀어주는 등 노조 파괴 수단으로 악용된다”며 “법원이 악의적 의도에 의한 손배 가압류는 소권 남용으로 판단해 기각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업들 입장은 정반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오히려 노조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사업장 점거를 아예 금지하는 방향으로 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란봉투법 입법까지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