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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과 바다

입력 2022.09.03 03:00

‘태양과 바다’라는 제목의 작업을 알게 된 것은 3년 전이었다. 노래하는 이들이 인공해변에 누워 가만히 있거나 가끔씩 노래하는 장면을 보여준 이 ‘오페라-퍼포먼스’는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리투아니아관에서 공개됐다. 무대와 성악가, 서사가 있는 오페라이긴 했지만, 보통 오페라에서 기대될 법한 대대적인 클라이맥스는 없었다. 긴박하게 몰아치는 갈등도 없었다. 아무도 열창하지 않았다. 특별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루함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해변가에서 시간을 보내며 종종 노래하는 피서객이 누워 있었을 뿐이다. 이 묘한 광경에 대해 작가들은 이렇게 썼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신예슬 음악평론가

“해변을 상상해보세요. 타오르는 태양, 자외선 차단제, 밝은 수영복, (…) 가끔 들려오는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웃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스크림 트럭 소리, 파도 위의 음악적인 리듬.” 작업의 소개글 또한 느긋한 풍경을 자세히 묘사하는 듯했지만, 글은 이렇게 끝났다. “…그 아래엔 진이 다 빠져버린 지구의 느린 삐걱거림과 거친 숨소리.” 이 오페라-퍼포먼스가 겨냥하는 지점은 그 이면에 있었다. 사람들이 안온한 바캉스를 보내는 동안 조금씩 죽어가던 지구, 아마도 기후위기라는 말로 통칭될 중대한 문제 말이다.

꽤 멋져보였던 그 바캉스 풍경에는 묘한 불안감이 감돌았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은근히 눈에 띄었고, 음악은 어딘가로 나아가기보다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언제 노래가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무언가 멈춰있었고, 기대할 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오페라-퍼포먼스는 생생한 공연보다는 움직이는 사진에 가까워보였다. 추후 음반으로도 발매된 이 오페라-퍼포먼스의 트랙 리스트에는 ‘선크림 보사노바’ ‘탈진의 노래, 워커홀릭의 노래’ ‘화산 이야기’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탈진한 세계가 지구 위에 얹혀있다. 이 이야기는 누구 하나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이야기였다.

기후와 지구에 관심을 기울여온 이들은 전 분야에 포진해 있었지만 특히 최근 몇 년간은 예술계에서도 그 주제에 대한 집중도가 한껏 높아졌다. 한동안 기후위기라는 문제상황을 더욱 통렬하게 보여주려 한 작업이나 전혀 다른 미래를 상상케 하는 작업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 메시지가 강력했던 까닭에 우선은 공감하며 보고 들었지만, 이것이 굳이 예술의 언어로 재구성되어야 했을지 자문하게 하는 작업도 더러 있었다. 예술을 생산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와 비용을 소모하는 일이고, 그것을 감상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작업은 반드시 예술의 방식으로만 이야기되어야 우리의 무언가를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곤 했다. 언어로 다 형용할 수는 없지만 때론 예술작업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중요한 감각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자리만을 맴도는 듯했던 ‘태양과 바다’의 음악은 바닷가를 지날 때마다 종종 생각났다. 아주 맑고 푸른 일상적인 날에도 은근한 불온함을 감지하는 날이 찾아오곤 했다. 보기엔 멀쩡해보이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고, 다가올 미래가 없는 듯한 느낌은 내게 선명히 체화되어 꽤 자주 떠오르곤 했다.

기후위기 같은 중대한 문제 앞에서 예술이 뭘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무력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종종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선언이나 운동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곳에서, 예술의 언어는 그 문제를 둘러싼 창작자의 견해를 감각정보로 바꾸고, 이를 보고 듣는 이의 몸에 새긴다. 그 몸의 기억은 때로 언어화된 정보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다. 그리고 어떤 변화는 그 감각적인 소통을 통해서만 만들어낼 수 있을 거란 생각 아래 창작자들은 무언가 만들고, 보여주고,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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