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휴대전화 판매 매장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성지는 종교 발상지나 순교가 있었던 성스러운 곳이다. 예루살렘과 메카 등이 대표적이다. 요새는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유명해진 촬영지도 성지 대접을 받는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김밥집과 팽나무는 시청자들이 성지순례 하듯 찾아가 인증샷을 찍는다. 휴대전화에도 성지가 있다. 이동통신사 대리점에 비해 훨씬 싼값에 파는 판매점이다.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규정보다 훨씬 더 많은 보조금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성지로 불리지만 불법이 판치는 곳이다.
지난달 26일 약 40개국에서 출시된 ‘갤럭시Z 플립4’(256GB) 출시가격은 135만3000원이다. 4일 기준 이통 3사 홈페이지의 가격을 비교해봤다. 기기변경으로 24개월 사용, 월 9만원가량인 5G 요금제를 선택하면 각사가 50만~52만원 공시지원금을 제공한다. 추가지원금 15%를 더하면 가격은 75만5000~77만8000원으로 낮아진다. 서울 영등포의 휴대전화 성지라는 곳에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시세표는 딴판이다. 유사한 조건에 LG유플러스가 14만원으로 가장 낮았고, KT 24만원, SK텔레콤 42만원 등이었다. 보급형 모델은 오히려 ‘차비’ 명목으로 현금을 지급한다고 했다. 온라인에도 오프라인과 가격대가 엇비슷한 휴대전화 성지가 여럿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날 양정숙 무소속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단통법 위반으로 과태료와 시정명령을 받은 휴대전화 유통점 28곳 중 12곳(43%)이 온라인 매장이었다.
불법 성지의 가격 후려치기 뒤에는 이통사의 묵인·방조가 있다. 이통사는 각 판매점에 휴대전화를 팔 때마다 판매장려금(리베이트)을 지급한다. 단통법에는 추가지원금을 15%로 제한했지만 각 이통사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이 포화상태여서 가입자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불법이라도 성지를 운영하는 편이 낫다고 본 것이다. 신상 휴대전화가 열흘도 안 돼 출시가격의 10분의 1 수준에 팔린다. 유통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됐다. 효과 없는 단통법은 고쳐야 하고 이통사만 폭리를 취하는 구조도 손봐야 한다. 이쯤되면 아파트뿐 아니라 휴대전화 원가가 얼마인지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