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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가을로 접어들며 무더위가 가니까 지내기는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가뭄과 호우 때나 반짝하는 기후에 관한 관심도 함께 가버릴까 걱정이다. 올해도 세계 곳곳이 혹독한 기후 재난에 시달렸다. 유럽과 중국은 가뭄, 파키스탄은 홍수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고 한국도 기상 관측 사상 최대라는 비가 서울과 중부 지방을 덮쳤다. 모두 ‘유례가 없는’ 규모였고, 이 불길한 수식어는 해마다 강도를 높여 등장할 것 같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과 중국의 첨예한 대립 같은 국제적 분쟁과 갈등이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기후위기의 국제적 공조를 어렵게 한다. 국내 상황은 더 암울하다. 지난 정부에서는 탄소중립 ‘선언’이니 탄소중립위원회 ‘발족’이니 하며 담론은 있었는데, 지금 정부에서는 아예 담론조차 실종됐다. 핵발전 확충 명분이 필요할 때만 기후는 위기가 된다. 기후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모습은 지난 호우로 일가족 3명이 숨진 반지하 집 바깥에서 우산을 쓰고 쪼그려 앉아 있는 대통령을 닮았다. 꼭, 구경꾼 같다. 집권당은 집안 싸움하느라 기후는 안중에도 없다.

기후위기를 ‘기술’로 모면하자는 생각은 여전하다. 해결사로 등장한 탄소 포집·저장 기술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그 매력에 심각한 문제들이 가려져 있다. 지금은 소규모로만 가능한 이 기술을 실제로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을 정도로 구현할 수 있는지, 그 시점은 언제인지, 모두 불확실하다. 탄소 포집·저장 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얼마나 되는지, 계속 포집하는 탄소를 어디에 얼마나 묻을 것인지, 그곳은 안전한지, 모두 불확실하다.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 기술에 매달리느라 정작 필요한 체제 전환은 미뤄지고, 사람들은 기술이 알아서 해결하겠거니 생각한다. 설혹 기술로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지금 기후 재난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불평등은 더 늘어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바꿔야만 희망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하지만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가 체제의 ‘대안은 없다’며 우리 마음에 체념을 내재화했다. 상상력이 고갈된 우리는 현재의 변화를 꿈꾸기는커녕 두려워한다. 전 지구적 차원의 거대한 기후 문제를 시원하게 풀어줄 거대한 해법은 없다. 다양한 작은 대응이 있을 뿐이다. 지구공학 같은 거대한 기술 요법은 허황하기도 하지만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다. 기후도 거대한 이윤을 안겨줄 유망한 사업 종목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해법을 기대할 순 없다.

자본주의는 온실가스 감축보다 이윤 증대에 훨씬 관심이 많다. 이윤 증대를 위한 성장은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뜻이다. 성장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빠져나가기다.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 우리는 어떤가? 체제의 변화라는 거대한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 이렇게 우리는 무력한 방관자로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거듭 묻는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청노동의 착취적 현실을 고발했던 철창의 절규는 가뭄으로 밭과 마음이 타들어 가는 농촌에서도, 공장식 축산으로 무너져가는 아마존 열대우림에서도 터져 나온다. 이들 절규에 담긴 현실을 외면할 때, 희망은 없다. 미래의 재난에는 “아직 괜찮으니까”, 현재의 재난에는 “나는 괜찮으니까” 이러면서 가짜 위안에 빠져 진짜 현실을 외면할 때, 희망은 없다. 이들 절규가 사그라지지 않게 기억하고 여기에 우리의 목소리를 더할 때, 희망은 있다. 가뭄과 산불, 폭우와 홍수가 닥치면 기후위기라 호들갑을 떨다가 이내 머리를 흔들고 고개를 떨군 채 일상으로 돌아갈 때, 희망은 없다. 온전한 기억으로 재난의 현실과 맞설 때, 희망은 있다.

문제가 심각할수록 근원으로 내려가야 희망이 있다. 기후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뜻이 있다면, 체제의 전환은 비현실적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다. 목적지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면, 내려서 다시 타야 한다. “주판도 잘못 놓게 되면 털고 다시” 놓아야 한다(장일순). 이런 게 ‘근원적 전환’이다. 가장 현실적이지 않은가? 그대로 주판만 열심히 놓으면 잘못은 더 커진다. 체제를 한 번에 바꿀 순 없겠지만 “1인 혁명”은 할 수 있다(로버트 프로스트). 지금까지 열심히 놓아온 주판을 이젠 그만 털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적 변화의 물꼬도 트인다. 사회의 근간이 사람의 관계라면, 그럴 것이다.

‘기후정의행진’은 변화의 시작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내가 변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세상이 함부로 굴러간다고 내 삶을 함부로 굴릴 까닭도 없다. 거대한 문제라고 주눅들 것도 없다. 기후가 모두의 문제라면 그건 바로 내 문제다. 이대로 살 순 없다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번 움직여보는 건 어떨까. 9월24일 ‘기후정의행진’에 보태는 우리의 작은 발걸음 하나하나가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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