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물에 잠긴 포항 대송면 제내리
6일 오후 1시쯤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한 펜션이 태풍으로 불어난 하천에 지반이 내려앉아 물에 반쯤 잠겨있다. 김현수 기자
소파와 냉장고, TV 등 성한 것 아무것도 없어
마을 점령한 흙탕물에선 기름 냄새가 코 찔러
“너거 집은 어데까지 찼노.”, “다 찻삐릿다.”
6일 오전 10시40분쯤 경북 포항 남구 대송면 제내리. 이곳에서 재활용센터를 운영하는 정정용씨(55)가 넘어진 냉동고 사이의 짐을 정리하며 친구 장재식씨(55)에게 덤덤하게 물었다.
폭풍우가 이들의 생계 터전을 덮치기 시작한 건 이날 오전 5시쯤. 5층짜리 아파트 1층에 살던 장씨는 같은 아파트 5층에 사는 정씨네 집으로 아내를 대피시켰다.
그는 “오전 5시쯤 칠성천이 범람하면서 마을이 완전히 물에 잠겨 버렸다”며 “소파와 냉장고, TV 등 성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허탈해했다.
이날 1136가구 2002명이 거주하는 대송면 제내리는 완전히 물에 잠겼다. 마을 골목 곳곳에는 급류에 휩쓸린 차량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마을을 점령한 흙탕물에서는 역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민들은 물살에 휩쓸린 오토바이에서 기름이 샌 것 같다고 추정했다.
6일 오전 10시40분쯤 경북 포항 남구 대송면 재내리의 한 가정집이 태풍으로 인해 침수됐다. 김현수 기자
이곳에서 40년간 거주한 이진수씨(69)는 “이런 태풍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태풍 매미가 포항을 덮쳤을 때도 마당에만 물이 5㎝ 정도 잠긴 수준이었다”며 “이번 태풍에는 물이 허리까지 찼다. 집안에도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집안 살림이 거덜 났다”고 말했다.
정재훈씨(53)는 쏟아지는 폭우를 바라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7살 아들과 배우자를 주택 2층으로 피신시킨 뒤, 배수로에 이물질이 쌓이면 걷어내기를 반복했다. 그는 하수관 배수로에 쌓인 이물질이 이번 사태의 주범이라고 추측했다.
정씨는 “구청에서 하수관로 정비를 몇 년째 하지 않았다”며 “하수관로에 쌓인 이물질을 제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3년이 넘도록 정비 한번 없었다”고 말했다.
포항 북구 흥해읍 남성1리에 거주하는 김진환씨(57)는 반쯤 부서진 둑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둑이 완전히 무너졌다면, 낮은 지대에 있는 남성1리가 모두 물에 잠길뻔했기 때문이다.
6일 오후 1시쯤 포항시 남구 오천읍의 한 도로가 태풍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 모습. 김현수 기자
가족들 2층으로 대피 시키고 배수로 청소
지자체선 3년 넘도록 하수관로 정비 안 해
이날 남성1리와 2리를 가로지르는 소하천 범람을 막는 거대한 콘크리트 둑은 휴짓조각처럼 너덜너덜했다. 둑 아래 콘크리트는 거센 물살에 쓸려 내려갔고, 철근은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남성1리에 거주하는 권모씨(69)씨는 주방으로 들이닥친 흙탕물을 쓰레받이로 퍼내고 있었다.
권씨는 “마을 경로당에 대피해 있다가 비가 그치고 집을 정리하러 왔다”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대송면 제내리에서 35년째 제과점을 운영하는 최창식씨(65)도 걱정이 태산이다. 신기동 일대가 물에 잠기면서 아직 가게에 가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최씨는 “아침 일찍 가게로 가봤지만 일대가 물에 잠겨 발걸음을 돌렸다”며 “제빵기계 등이 모두 물에 잠겼을 생각을 하니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말했다.
포항 북구 흥해읍 남성1리에 거주하는 김진환씨(57)가 6일 오전 남성1리와 남성2리를 가로지르는 둑이 반쯤 부서진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김현수 기자
경로당에 피신했다가 집에 가보니 ‘막막’
학교 운동장은 수영장처럼 물 가득 차
풀빌라 펜션은 지반붕괴로 하천에 잠겨
대송중학교의 고이만 교장은 학교 운동장 반대편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오전 10시쯤 학교 운동장은 수영장처럼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운동장 반대편이 모두 논밭이다”며 “농민들 한해 농사를 다 망친 셈이다 이를 어쩌면 좋느냐”고 한탄했다.
이날 오후 1시쯤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강성중씨(49)는 불어난 물에 지반이 약해지면서 내려앉아 버린 풀빌라 펜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 펜션은 강씨 내외가 지난 7월 오픈한 펜션이다. 이날 항사리 일대는 전신주 등이 무너져 통신이 마비됐다.
강씨는 “인건비도 줄이기 위해서 누나와 매형까지 동업해 풀빌라 펜션을 운영을 시작했는데 날벼락을 맞았다”며 “대출금리도 계속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했다.
포항 북구 흥해읍 남성1리에 거주하는 권모씨(69)가 주방으로 들이닥친 흙탕물을 쓰레받이로 퍼내고 있다. 김현수 기자
강씨는 이날 무너진 펜션에 강씨의 누나와 매형이 있었다고 했다. 전날인 5일 오후 9시까지 전화 통화를 했지만, 새벽쯤 연락이 두절됐다고 했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달려왔지만 도로가 통제됐다”며 “다행히 강 건너편에서 누나와 매형이 무사한 모습을 보고 자리에 주저앉았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번 피해가 신광천 상류 오이지의 대량 방류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전날 오후 9시까지 신광천에 물이 거의 없었는데, 오이지에서 갑작스러운 방류로 거센 물살이 내려오면서 지반 아래 토사 유출을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오이지에서 방류가 없었다”며 “폭우로 저수지 수위가 높아지자 급하게 방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올라온 방민상씨(34)는 신광천의 거센 물줄기를 바라보며 애간장을 태웠다. 방씨의 어머니가 신광천 건너 항사리에 거주하고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 탓이다.
6일 포항시 남구 오천읍의 한 공장이 지반침하로 무너져 있다. 김현수 기자
방씨는 “새벽 내내 전화 통화가 되지 않아서 대전에서 포항으로 달려왔다”며 “어머니가 부디 무사하셨으면 좋겠다”며 마른침을 삼켰다.
단시간에 포항을 할퀴고 간 태풍 ‘힌남노’에 포항 도로 곳곳이 침수됐고, 물에 떠밀려온 차들이 도로에 방치됐다. 오천읍 인근에는 작은 산사태가 일어났고, 전신주 등이 무너진 곳도 많았다. 이마트 포항점을 비롯해 일부 편의점 역시 침수로 이날 영업을 중단해야 했다.
대구지방기상청에 따르면 4일 0시부터 6일 오전 11시까지 포항의 누적 강수량은 393㎜에 이른다.
6일 포항 남구 오천읍 신광천 인근의 한 가게가 지반침하로 반쯤 무너진 상태로 위태롭게 서있다. 김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