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핵무력’ 법제화한 북한, 도발적 조치로 얻을 것 없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가 지난 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리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법령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가 참석 대의원 만장일치로 가결된 뒤 연설을 통해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가 지난 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리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법령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가 참석 대의원 만장일치로 가결된 뒤 연설을 통해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

북한이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했다.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기한 지 10년 만에 핵무기의 사용원칙과 운용방안 등을 체계화해 공개한 것이다. 이 법령은 북한이 핵 공격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도 핵을 선제 사용할 수 있다고 법에 명시했다는 점에서 도발적이다. 7차 핵실험의 자락을 깔아둔 것도 우려스럽다.

북한은 정권수립기념일 하루 전인 지난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를 열고 2013년 제정한 법령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를 새 법령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로 대체하기로 의결했다. 새 법령에서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외부의 비(非)핵무기 공격에도 핵무기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명시한 것이다. 법령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대원칙을 밝히면서도 “외부의 핵무기나 기타 대량살상무기 사용 임박” “지도부에 대한 공격 임박” “전쟁 확대와 장기화” 등 상황에서도 핵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공개된 핵 사용 조건 가운데 가장 광범위한 해석이 가능한 조건이다. 북한판 ‘미치광이(MAD·상호확증파괴) 전략’이라 부를 만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핵무력 정책을 법적으로까지 완전고착시키는 역사적 대업”이라며 “(핵무기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한·미 연합훈련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뒤 “공화국의 국방성과 국방공업은 조성된 국면을 군력강화의 더없는 좋은 기회로 삼을 것”이라며 7차 핵실험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번 조치로 인해 한반도 비핵화로 가는 길이 더 어려워진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경천동지할 일은 아니다. 북한은 이미 2012년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했고, 김 위원장은 올해 4월 연설에서 핵 선제 사용 ‘교리’를 발표한 바 있다. “우리 핵 정책이 바뀌자면 세상이 변해야 하고 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환경이 변해야 한다”는 김 위원장 발언은 대남·대미 협상력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핵무기의 가치를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 북한의 체제안보 위기는 외국의 공격보다 자국 내 불만과 변화 요구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이번 시정연설에서 성과가 미미하다고 인정한 ‘먹는 문제, 소비품 문제’ 해결은 ‘핵무기 포기 절대 불가’ 입장과 양립하기 어렵다. 7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국제사회 제재가 강화되며 이러한 과제 해결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에서는 독자 핵무장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확장억제 강화와 더불어 외교를 통한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더 나은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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