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이석우 기자
국가보안법 일부 조항의 존폐 여부를 두고 15일 헌법재판소에서 공개변론이 열렸다. 보안법 조항의 존폐 여부를 둘러싸고 헌재에서 공개변론이 열린 것은 처음이다. 앞서 헌재는 보안법 조항들에 대해 7번의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공론의 장’에 올린 것이다. 공개변론에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권 등에 의한 오남용 가능성이 있어 폐지해야 한다”는 청구인 측과 “오남용은 과거의 일일뿐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법무부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혔다.
헌재는 국가보안법 2조와 7조 1항, 3항, 5항에 제기된 11건의 헌법소원과 위헌법률제청 사건을 병합해 이날 공개변론을 열었다. 2조는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한다. 7조 1항, 3항, 5항은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고무하거나 이러한 단체에 가입하는 것, 또는 반국가단체 표현물을 제작·소지·반포하는 행위 등을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학술·예술 목적이나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이적 표현’을 하거나 표현물을 소지한 경우에도 처벌될 수 있어 사상과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1990년 헌재는 7조 1항, 3항, 5항에 대해 한정합헌 결정을 내렸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한해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에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듬해 해당 조항이 개정됐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라는 문구 등이 추가됐다. ‘국가안보나 민주질서를 위협하려는 목적’이 입증돼야 처벌할 수 있다는 제약 조건이 추가된 것이다. 이후 헌재는 2015년까지 6번을 더 심리했고,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날 공개변론에서 청구인 측 대리인들은 보안법 해당 조항은 오남용될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고 주장했다. “‘국가안보나 민주적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수도 없으니 정황 증거만으로 판단하게 되고, 결국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신념이나 생각을 표현할 때 자기검열을 하게 만들고, 정치권력이 반대파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법무부 측 대리인들은 “정치권력 등의 오남용은 과거의 일”이라고 반박했다. “헌재의 한정합헌 결정과 법 개정 이후 법원은 ‘국가안보나 민주질서를 위협하려는 목적’을 판단하는 일관적이고도 엄격한 기준을 반복적으로 제시해왔다”며 “자의적인 법 적용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또 ‘내심의 의사’를 정황증거로만 판단하는 건 일반 형사범죄에서의 ‘고의’를 판단하거나 이른바 ‘목적 범죄’들의 ‘목적’을 입증할 때도 마찬가지라며 법원은 이에 대한 엄격한 입증책임을 검사에게 부여하고 피의자의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고 했다.
청구인 측은 ‘이적 행위’나 표현으로 현실적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어도 명백한 위험이 예상된다면 처벌할 수 있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광범위하게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차진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안보라는 보호법익의 특성상 한번 침해되면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방적 처벌의 필요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 즉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사상·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지도 쟁점이었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중핵이 되는 기본권”이라며 “설사 적성단체의 주장과 유사한 사상이더라도 형벌로 제한하기 보다는 사상경쟁의 자유시장에 맡기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또 이적 표현물을 전파하지 않고, 단지 소지하기만해도 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실현’ 뿐 아니라 ‘양심을 형성할 자유’마저 제한하는 것이라고 했다.
법무부 측은 “헌법의 최고 가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며 그런 가치를 지킬 수 있는 한도에서 사상의 자유도 보장된다고 반박했다. 또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은 정보확증편향이 쉽게 발생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간과한 주장이며, 정보의 복제와 확산이 통제 불가능한 디지털 시대의 특성상 ‘이적 표현물’을 소지한 행위는 전파 위험성을 당연히 동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약, 무기, 아동성착취물의 소지의 경우에도 처벌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재판관이 “마약류, 아동성착취물 등은 그 자체로 사회가치에 반하는 것인데, 이를 표현물과 비교하기는 어렵지 않은가”라고 반문하자 법무부 측은 “이적표현물은 국가의 존립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표현물이기 때문에 마약, 아동성착취물 등보다 위험성이 낮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유엔 국제자유권규약위원회 등의 폐지 권고 등에 대해 청구인 측은 “국제법 존중주의에 따라 헌재의 위헌 판단의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무부 측은 “참고는 할 수 있으나 법적 기속력은 없다”고 맞섰다.
재판관들은 헌재가 해당 조항들에 대해 마지막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2015년 이후 판단을 달리해야 할 상황의 변화가 있으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청구인 측은 “남북간 체제경쟁이 이미 한국의 승리로 끝났고 그간의 민주주의 성숙도도 높아진 만큼 판단이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반면 법무부 측은 “북한은 올해에만 14번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무력 적화 통일을 포기하지 않고 있어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