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범인 전 모씨가 지난 16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수빈 기자
경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얻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의자의 태블릿 PC 등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디지털 기기에 저장된 자료 분석 및 복원) 작업에 나섰다. 피의자가 범행 전 피해자가 살았던 주거지 인근을 배회하고, 휴대전화에 위치정보시스템(GPS) 정보를 조작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해 두는 등 계획을 세우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의자 전모씨(31·구속)의 태블릿 PC 1점과 외장하드 1점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18일 밝혔다. 전날 경찰은 전씨가 혼자 거주하는 서울 서대문구 자택 압수수색을 벌이고 전씨의 태블릿 PC와 외장하드 각 1점을 압수했다.
경찰은 포렌식 작업을 벌인 기기에서 피의자의 범행 계획 여부와 추가 범행 여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앞서 확보한 전씨의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작업은 마무리됐으며, 포렌식을 통해 얻은 정보를 분석 중이다. 전씨의 스마트폰에는 GPS 정보를 조작할 수 있는 앱이 설치돼있으며, 휴대전화 내 일부 파일은 삭제된 흔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전씨가 스토킹 혐의 등으로 기소된 재판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전씨를 형법상 살인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보복살인으로 혐의를 바꿨다고 전날 밝혔다. 특가법상 보복살인의 최소형량은 징역 10년으로, 징역 5년 이상인 형법상 살인죄보다 형이 무겁다.
전씨가 일회용 위생모와 흉기 등 범행도구를 준비한 것 외에도 범행을 계획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전씨는 범행 약 8시간 전인 지난 14일 오후 1시20분쯤 자택 근처 ATM에서 1700만원을 인출하려다 인출 한도를 넘어 실패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전씨가 현금을 찾아 범행 후 도주자금으로 사용하려 한 것이 아닌지 살피고 있다. 이에 대해 전씨는 경찰 조사에서 “부모님에게 드리려고 했었던 것이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당일 전씨가 피해자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정황도 드러났다. 서울경찰청은 전씨가 범행 당일 ATM에서 나와 자신의 집으로 들러 범행 도구가 담긴 짐을 챙겨들고 오후 2시30분쯤 집을 나섰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18일 밝혔다. 증산역에서 서울교통공사 내부망인 ‘메트로넷’에 접속해 정보조회를 한 전씨는 피해자의 전 거주지 근처로 향했다. 폐쇄회로(CC)TV 분석 결과 피해자 의 전 거주지 인근을 찾아간 전씨는 노란색 겉옷을 착용하고 흰 가방을 맨 차림으로 7분 넘게 한 여성을 따라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이날 오후 6시쯤 구산역 역무실로 이동해 교통공사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메트로넷을 통해 피해자의 근무지와 시간을 알아냈다. 이후 한번 더 피해자의 옛 자택 근처를 방문한 전씨는 이날 오후 7시1분쯤 구산역에서 지하철을 탑승한 뒤 2호선 신당역으로 향했다.
경찰 관계자는 “전씨가 범행일 이전에도 피해자가 살던 집 근처를 찾아간 사실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지난 3일 구산역을 찾아 역무원에게 “휴가 중인 불광역 직원인데 내부망을 사용하겠다”고 말한 뒤 서울교통공사 내부망인 ‘메트로넷’에 접속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범행 30분 전 전씨가 신당역 화장실 앞에서 피해자와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쳤다는 사실도 파악했다. 당시 피해자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던 전씨는 경찰 조사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만 해도 범행을 고민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당일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은 것으로도 확인됐다. 범행 이후 수사나 재판에서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던 것 아니냐는 추정도 나왔다.
전씨는 과거 음란물을 유포해 두 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오는 19일 피의자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전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