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에 소극적인 기업, 정치인 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직접행동에 나선 이후 재판을 진행 중인 활동가들과 이들을 변론 중인 변호사가 모였다. 활동가들은 사법부의 판결문에서 ‘법이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더 나아가 지금은 활동가들이 ‘피고’이지만 기업과 정치인을 ‘피고’로 만들 수 있는 법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녹색당, 멸종반란, 청년기후긴급행동 등은 지난 22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문화공간 길담에서 ‘기후재판 투쟁 당사자 합동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패널로 참여한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공동대표는 지난해 2월 두산중공업 앞 ‘DOOSAN’ 조형물에 녹색 페인트를 뿌리는 석탄 발전소 건설 반대 시위를 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민사재판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에 대한 형사재판을 겪고 있다. 멸종반란에서 활동하는 랑(활동명) 활동가는 지난해 3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의 당사 건물 1층을 봉쇄하고, 건물 1층 지붕 위에 올라가 기습 시위를 하다가 공동건조물침입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형사재판을 진행 중이다. 이상현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지난해 10월 포스코 주최로 열린 ‘수소환원제철포럼’ 행사장에서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발언을 1분간 한 것으로 인해 공동주거침입과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은호 청연 활동가는 세 개의 직접행동에 모두 참여했다. 이치선 법무법인 해우 변호사가 청년기후긴급행동, 녹색당 등의 변론을 맡고 있다.
이들이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활동가들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봐야 한다’는 심정으로 직접행동에 나섰다고 입을 모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촉박한 심정도 토로했다. 기후 재난이 눈앞에 있는데 신공항을 건설하고, 석탄발전소를 지으려는 정부와 2030년까지 사실상 온실가스를 감축할 계획이 없는 기업 등의 행태는 이들에게 시민들의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을 침해하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은호 활동가는 “권력자들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해서 우리의 생명, 안전, 미래와 현재를 동시에 재앙에 빠트렸을 때 이것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시민들이 지켜보고, 문제 제기하고,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직접행동의 대가로 한 명당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이 넘는 벌금·손해배상액을 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활동가들은 ‘직접행동’이 필요하다고 봤다. 기자회견, 집회 참여, 성명 같은 반복된 행동으로는 포스코, 민주당, 두산은 바뀌지 않았다. 이상현 공동운영위원장은 “질의서를 넣고, 의석을 가진 정당과 협의도 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받아 행동도 했는데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기후위기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들을 제대로 대리할 정치 세력은 없다”며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는 의회 밖에서, 제도정치 밖에서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 공동대표는 “직접행동으로 두산에서 4명의 변호사가 붙어서 힘을 쓰며 반응하고 있다”며 “직접행동을 하는 게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법체계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지 못할 때 집회와 시위를 통해 표현하는 것은 ‘권리’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치선 변호사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파리협정에 현저히 미흡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법률이 국민의 생명권 등 기본권을 지키지 못할 때 시민들은 당연히 집회와 시위를 통해서 권리를 표현해야 한다”며 “사법부도 법을 적용할 때 현재 법이 기본권 보호 의무가 미흡한지 충분히 성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싸움이 쉬운 사람은 없지만, ‘혼자 울지 말고’
활동가들도 ‘무죄’를 받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사법부의 약식명령에 불복하는 의미로 정식 재판을 청구한 이유는 재판을 통해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직접행동이 정당했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다. 이치선 변호사는 “형법에는 어떤 행위가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해도 사회 상규에 어긋나지 않으면 벌하지 않는다는 ‘정당행위’라는 규정이 있다”며 “생존의 기반인 지구가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목적인 직접행동과 이로 인한 피해의 경중을 고려해 사법부가 기후위기 대응에 공감하는 판결문을 단 한 줄이라도 남겨주기를 바라고, 그런다면 승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활동가들이 직접행동을 한 이유를 만든 기업 등을 막을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상현 활동가는 “우리의 삶이 이어질 수 없게 하는 건 기업과 국가이고, 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며 “피고와 원고를 뒤바꿔 정부와 기업을 피고로 세우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들에게도 싸움이 쉬운 일은 아니다. 빡빡한 일정에 지치고, 바뀌지 않는 현실에 답답해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따라가는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 가정을 꾸리는 ‘시나리오’에서 벗어나 살며 형편이 넉넉지 않은 사례도 있다. 생일날 소송에 휘말렸다는 문서를 받고, 동료가 암에 걸려 쓰러져 가는 모습을 봐야 했던 활동가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혼자 울지 말고’, 모여서 ‘외치는 것’에서 희망을 찾는다. 오는 24일 있을 행진을 계기로 ‘기후위기’는 지하철에서, 마을에서, 학교에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랑 활동가는 “온라인에서도 행진에 관한 게시물을 올려주는 것을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며 “정말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에 대해서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은호 활동가는 “오는 24일 기후정의행진이 있다. 나 혼자가 아니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가 이렇게 힘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는 게 희망의 증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