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 타파하던 조선 정치가들의 미신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누군가가 운명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갖게 된다면 아마도 인간의 노력과 무관하게 운명이 흘러가는 상황에 직면하면서부터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운명의 존재를 굳게 믿고 실패를 막을 구체적인 조처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때때로 개인의 기도를 넘어서 부적이나 굿, 그 이상의 것을 통해 운명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만약 이러한 인간의 노력을 미신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조선은 이런 노력의 성상들을 파괴하며 건국한 국가이다. 고려는 정치적으로 풍수지리와 점사 등에 크게 의존했고, 왕과 관료들은 민란이 생기거나 국정에 문제가 생기면 도읍을 옮겨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고려의 정치인들은 ‘운명’을 조절함으로써 국가를 유지하려 했다면, 조선의 건국자들은 이런 생각이 정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학자들은 구체적인 정치, 행정, 사회질서의 구축을 추구했고, 미신으로 정치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비판하였다.

인간이 운명에만 매달리게 되면 외부의 구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다. 구체적인 제도, 제도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과 그 과정에 관심을 두는 유학자들에게 운을 좋게 만들어 성공하고자 하는 이들이 주류가 되는 것은 공동체의 불행이었다. 자기 성공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개인들과 그들의 가치지향이 기준이 된 공동체는 결국 무질서해지고 그 내부에 폭력이 만연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국가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개인을 경계해왔던 것은 이런 사정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는 조선은 건국 이래 계속 미신적 사고를 배제하였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유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는 기근과 전염병이 계속 발생해서 수만명이 넘는 사망자들이 발생하는데, 당시 국가의 재정과 정치가들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규모의 재해였다. 국가의 제한된 재정으로는 재해복구도 불가능하고, 내세관도, 운명에 대한 설명도 없는 유교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어떤 위로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유학자들이 배척하여 밀어낸 미신의 공간에 유교의 얼굴을 하고 들어오는 새로운 ‘미신’이 있다. 그것은 세계를 ‘음양오행’에 따라 설명하는 것이다. 음양오행은 유교에서 세계를 설명하는 토대이기 때문에 유교적 사유와 배치되지 않았고, 한의학이나 천문지리와 연결되어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오행사상이 개인들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예가 항렬자이다. 조선 후기 사대부들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 오행적으로 충돌하지 않도록 상생관계로 항렬을 만든다. 아버지의 항렬에 수(水) 자가 들어가면 아들 항렬에는 목(木)을 넣고, 손자의 이름에는 화(火)를 넣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오행을 고려해 항렬자를 만드는 일은 사실 18세기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세도가인 안동 김씨들은 18세기 말 19세기 초부터 오행에 따라 항렬을 만들고, 조선의 왕실은 고종 이후부터 오행에 따라 이름을 지었다.

물론 조선 후기 사람들에게 오행은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을 구별해주는 ‘과학적’인 기준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오행 사상에서 파생된 점이나 사주 등을 과학이라고 하지 않는데, 보편적인 과학과 달리 인간 일반, 공동체에 대한 설명보다는 개인의 길흉화복에 대한 설명과 대안 제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이런 사유에서는 나의 이익이 남의 이익과 경쟁하며, 남에게 나쁜 것이라도 나에게 좋으면 이익이 되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역사 속 국가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운명’에 지대한 관심을 두면서부터 국가가 쇠락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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