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 “완화 조짐에 보류할 수밖에”
징수도 없었는데 국토부, 곧 완화 방안 발표
정부가 2018년 이후 전국 재건축 추진 단지에 3조원 넘는 초과이익 부담금을 통보했으나 현재까지 실제로 부과·징수된 단지는 단 1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에는 준공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부담금이 징수되지 않은 재건축 단지들도 있었다. 재건축 과정에서 발생한 초과이익을 환수해 주거복지 강화 등에 사용하겠다는 취지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사이 서울에서는 반지하에 사는 주거취약계층이 집중호우로 대거 침수 피해를 입었다.
28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재초환이 재시행된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재건축 추진 84개 단지에 통보된 재건축 부담금은 총 3조1477억원으로 집계됐다. 재시행 이후 4년간 통보된 재건축 부담금 총 규모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건축 부담금은 재초환 재시행 첫해인 2018년 784억원, 2019년 1429억원, 2020년 1조2058억원, 지난해 1조3714억원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집값 급등과 공시가격 현실화 등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올해들어 6월까지 통보된 재건축 부담금은 3492억원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2018년 이후 재건축 부담금이 부과·징수된 단지가 없다”고 밝혔다. 재건축 부담금 3조1477억원 중 정부가 걷어들인 금액은 0원인 셈이다.
재건축이 마무리된 지 1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재건축 부담금 부과·징수가 이행되지 않은 단지들도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현대와 은평구 연희빌라는 각각 지난해 7월1일과 5월18일 준공됐다. 조합원 1인당 재건축 부담금은 반포현대가 1억3569만원, 연희빌라가 7668만원이다. 재건축 부담금은 준공 후 5개월 이내에 부과 통보돼야 하지만, 있으나마나한 제도가 돼버린 것이다. 서울시는 이들 단지의 재건축 부담금와 관련해 “금년 하반기 부과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자체가 재건축 부담금 부과·징수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재건축 부담금 완화 방안을 수차례 예고했기 때문이다. 재건축 조합의 지속적인 부담금 부과·징수 연기·유보 요청도 작용했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정부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하는데 재건축 부담금을 부과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생길 것이고 조합원들의 민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기한 내 재건축 부담금을 부과하지 않았을 때의 벌칙은 없다보니 부과·징수를 보류해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선안이 바로 적용 가능한 내용일지 법령 개정사항이 나올지 봐야겠지만, 이전보다는 금액이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재건축 부담금이 국가와 광역·기초 지자체의 국민주택사업특별회계와 도시·주거환경정비기금으로 전입돼 주거복지 재원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재건축 부담금 완화는 사실상 주거복지 재원 감소를 의미한다. 국토부는 이번주 중으로 재건축 부담금 완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재건축과 반지하 모두 수도권, 특히 서울에 집중돼 있다”며 “재건축 부담금은 주거여건이 심각한 반지하 가구들에 대한 매입임대나 전세임대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날린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의원도 “제도 도입 이후 한번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던 재건축 부담금을 줄이겠다는 것은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복지 재원을 줄이겠다는 것”이라며 “재초환 무력화를 멈추고 부담금을 제대로 부과해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복지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